성 카타리나 수도원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우리는 아침에 일라트 해변으로 갔다.
동쪽으로 요르단의 아카바(Akaba) 항이 보인다. 1991년 42일 동안 세계를 긴장 속에 몰아넣었던 걸프 전쟁 때 이라크로 보내진 군수물자가 수송된 곳이 아카바 항구였다.
우리는 어제 타바(Taba) 국경을 넘어서 이집트로 왔던 것이다.

우리는 시나이 반도 씬(Sin) 광야를 세 시간 가량 달린 후 홍해 해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세 시간을 달려 시나이 산에 도착했다.
호렙 산이라고도 부르는 시나이 산은 시나이 반도 안에 우뚝 솟아 있다.
삼각형 모양의 시나이 반도는 그 면적이 이스라엘보다 두 배 이상 넓은 6만 1,000km2나 되어 구약시대 사람들이 시나이 반도를 “광대한 광야”라고 부르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산록에 있는 호텔에 투숙했는데 자연석으로 건축된 방갈로는 제주도의 옛 돌집을 연상하게 했다.

다음날 새벽 2시에 기상하여 시나이 산 등정길에 올랐다.
해발 2,285m 높이의 거대한 바위산이다.
아랍인들은 시나이 산을 “제벨 무사(Jebel Musa)”라고 불렀는데 ‘모세의 산’이란 뜻이다.
반마일쯤 올라가 ‘성 카타리나 수도원’ 광장에 도착했다.
수도원은 해발 1,530m 지점에 있다.
수도원 안에 이드로의 우물이 있고, 모세가 부름을 받았다는 떨기나무가 있다.
떨기나무는 시나이 반도 남쪽에서만 자라는 특이한 종자로 다른 곳에 이식하면 죽는다고 한다.
떨기나무가 너무 붉어서 모세는 불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어라” 하고 말씀하신 곳에 건립되었다.
수도원은 그리스 정교회 소속이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에게 박해받던 무렵 순교한 어느 귀족의 딸 이름을 따서 성 카타리나라고 부른다.
6세기 중엽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의 명에 의해 건립된 후 지금까지 140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다.
551년에 완공된 수도원에서는 수도사들이 어김없이 매일 하루에 두 번씩 예배를 드린다.
예배당 전면에는 예수, 모세, 엘리야, 그리고 예언자들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수도원 내 도서관에는 귀중한 자료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는데 3,000점 이상의 고대 성경사본과 5,000권 이상의 희귀한 성경들이 있다.
바티칸의 교황청 도서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경사본과 희귀성경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다.

19세기 중엽 독일의 학자 티젠도르프가 수도원에서 ‘시나이 산 사본(Codex Sinaiticus)’을 발견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는 수도원을 세 번 방문한 끝에 1859년 그것을 찾아냈다.
‘시나이 산 사본’은 300년대 후반에 필사된 것으로 신약성경 전체가 수록된 사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티젠도르프는 사본을 유럽으로 가지고 가서 당시 동방 정교회의 보호자였던 제정 러시아 황제에게 기증하였다.
그 후 러시아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1933년에 그것을 10만 파운드에 영국 정부에 팔았으므로 사본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5년 9월 놀라운 일이 수도원에서 벌어졌다.
낡은 방을 보수하려고 벽을 헐자 벽과 벽 사이 공간에서 수많은 성경사본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무려 오십 상자분의 성경사본이었다.
수도원은 그 사실을 극비에 부치고 사본을 보관했지만 독일의 어느 신문이 1977년에 그 사실을 보도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수도원 측은 아직도 사본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학자들에 한해 30분이라는 시간제약 하에 필사나 사진촬영을 금한 채 관람을 허락하고 있다.
독일의 신약성서 학자 마르틴 헹겔은 그것들이 “사해사본 발견 이후 최대의 사본 발견”이라고 했는데 내용의 전모는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모세가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곳이 어디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다만 수도원을 세워 상징적으로 기념하고 있을 뿐이다.

모세는 미디안 사제인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떼를 이끌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시나이 산)으로 갔더니 야훼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떨기에서 불꽃이 이는데도 떨기가 타지 않는 것을 본 모세가 “저 떨기가 어째서 타지 않을까? 이 놀라운 광경을 가서 보아야겠다” 하며 그것을 보러 오는 것을 야훼께서 보시고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하느님께서 부르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예, 말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하시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선조들의 하느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모세는 하느님 뵙기가 무서워 얼굴을 가렸다.
야훼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온다.
또한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못살게 구는 모습도 보인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어라.”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인데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리라.
너는 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다음 이 산에서 하느님을 예배하리라.”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그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 라고 하시는 그분이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일러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선조들의 하느님 야훼시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 되리라.
대대로 이 이름을 불러 나를 기리게 되리라. 【출애굽기 3: 1-15】

모세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모세는 하느님이 ‘나는 곧 나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바로 야훼를 뜻한다.
히브리어에는 미래형이 따로 없으므로 ‘나는 언제까지나 나일 것이다’라는 뜻도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온 모세는 시나이 산을 향해 걸었으며, 산 정상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한 후 하느님으로부터 두 개의 돌 판에 새겨진 ‘십계명’을 받았다.
예언자 엘리야도 이 산의 동굴에서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
구약성서는 시나이 산을 하느님의 산이라고 불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산들 가운데 가장 성스러운 산으로 여겼다.
우리가 정상을 오르는 것도 그러한 생각 때문이다.

약 반 시간쯤 더 올라갔을 때 베두인족 낙타꾼들이 낙타를 타라고 권했다.
산중턱까지 오르는 데 10달러라고 한다.
십여 명이 낙타에 올랐다.
기온이 낮아 한기가 느껴졌지만 얼마간 오르니 땀이 나고 숨이 차다.
주위가 캄캄한데 낙타는 바위틈 돌 밭길을 사뿐거리며 조심스럽게 걷는 것이 익숙한 걸음이다.
한 발만 헛디뎌도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터인데 낙타는 수없이 다닌 길이라 우리들을 휴게소까지 무사히 날라다주었다.
거기서부터 훨씬 가파른 길이 시작되므로 낙타는 더 이상 오를 수가 없다.
우리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걸어서 정상을 향했다.

설악산 대청봉보다 600m 가량 더 높은 정상에 오르니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그곳에 당도해 있었다.
우리 일행은 먼저 예배를 드렸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던 장소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깊고 꿈만 같았다.
멀리 동쪽에서 쟁반 같은 태양이 떠오르자 시나이 산 주위의 돌산들이 일제히 붉게 물들었다.
너무도 장엄하고 신비로운 장면이라 바라보는 사람들을 신비감에 싸이게 했다.

야훼께서 시나이 산 봉우리에 내려오셔서 모세에게 산봉우리로 오르라고 하시자 모세가 올라갔다. 【출애굽기 19: 20】

시나이 산은 주변 산맥이 여러 가지 색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바위산이다.
산봉우리에는 눈이 군데군데 쌓여 있었지만 다행히 길에는 눈이 얇게 덮여 있어 하산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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