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가모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악히살에서 베르가모(Bergamo)로 가는 길은 소나무가 울창한 산길이다.
그곳에만 소나무가 많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산을 넘어서 약 한 시간 동안 차로 광막한 평야를 달렸는데 지하에서 물을 공급하는 농토가 펼쳐져 있다.
야산에는 양떼들이 보였고 소떼를 먹이는 목장도 군데군데 보였다.

성서에 나오는 베르가모는 지금은 베르가마(Bergama)로 불린다.
대도시였던 베르가모는 오늘날 인구 6만 명의 작은 동네로 변했다.
해안으로부터 25km 가량 골짜기로 들어간 언덕에 위치해 있다.
기원전 3세기와 1세기 사이에는 베르가모 왕국의 수도로서 베르가모 산 위에 아크로폴리스 왕궁과 신전들이 있었다.
그들은 화폐를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빈 터로 남아 있지만 베르가모의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 가는 큰 도서관이었다.
베르가모 도서관은 도서수집광이었던 유메네스 왕의 후원으로 규모가 커졌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베르가모 도서관이 자신들의 도서관보다 커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곳으로 파피루스가 수출되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파피루스에 글을 썼으며 이집트는 질 좋은 파피루스를 수출하고 있었다.
파피루스의 수입이 불가능해지자 베르가모 사람들은 대용할 만한 것을 발명했는데 그것이 양피지였다.
양의 가죽을 펴서 늘인 후 표백시켜 건조하면 훌륭한 필사재료가 되었다.
베르가모 사람들은 양피지를 그곳의 이름을 따서 “버르가메나(Pergamena)”라고 불렀다.
버르가메나는 라틴어로 그리고 영어‘Parchment’로 변형되어 양피지란 말이 되었다.

기원전 1세기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화재로 크게 손상되어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매우 상심했다.
여왕과 각별한 사이였던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는 군대를 이끌고 베르가모 도서관의 장서를 알렉산드리아로 운반하여 클레오파트라 여왕을 기쁘게 했다.
베르가모 도서관에는 약 20만 권의 장서가 있었다고 한다.
베르가모 도서관은 19세기 독일인들에 의해서 베를린으로 이전되었다.

우리의 발길이 닿은 곳은 베르가몬 교회였다.
베르가모 교회에 서신으로 보낸 요한의 경고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네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곳은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너는 내 이름을 굳건히 믿고 있다.
또 나의 진실한 증인 안디바스가 사탄이 살고 있는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던 날에도 너는 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몇 가지 나무랄 것이 있다.
너희 중에는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발람은 발락을 사주해서 이스라엘 자손을 죄짓게 하였고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게 하였으며 음란한 짓을 하게 하였던 자다.
또 너희 중에도 니골라오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뉘우쳐라.
만일 뉘우치지 않으면 내가 속히 너에게 가서 내 입에서 나오는 칼을 가지고 그들과 싸우겠다. 【요한 묵시록 2:13-16】

베르가모에는 기원전 2세기경에 건축되었다고 하는 제우스 신전, 하드리아누스 황제 신전과 세라피스(이집트의 신) 신전이 있는데, 6세기 유스티아누스 황제 때부터 교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건물들은 모두 잔해만 남았지만 벽돌 벽의 두께가 3m 가량 되는 규모였다.

에페소가 상업의 중심지였던 반면, 베르가모는 역대 왕들의 문화, 학술, 의학, 예술에 대한 후원으로 유명했다.
베르가모에는 의약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klepius) 신전과 의학교가 있어 사방으로부터 병자와 예배자들이 모여들었다.
1960년대에 베르가모의 병원 아스클레피온이 발굴되었을 때 그 엄청난 규모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포장도로는 폭이 20m에 길이가 800m에 이르렀고 길 양쪽에는 15m 높이의 석주들이 세워져 있었다.
병원의 이름은 의약의 신 이름을 따서 아스클레피온이라고 불리었다.

아스클레피우스는 아폴론의 아들로서 아버지로부터 의술을 물려받았다.
그는 명의가 되어 죽은 사람도 살렸는데 그가 죽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살리고 죽을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쳤기 때문에 죽음의 나라의 왕인 하데스는 자기 나라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 분통을 터뜨렸다.
하데스는 제우스에게 아스클레피우스가 자기 영역을 침범하고 모든 신들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있다고 고소했고 제우스는 그것을 받아들여 벼락을 쳐서 아스클레피우스를 죽였다.
격노한 아폴론은 벼락을 제조하는 공장을 습격한 후 벼락을 만드는 기술자 큐크로프스를 죽이고 제우스에게 가서 아들의 입장을 변호했다.
제우스는 아스클레피우스를 도로 살려주었고 아폴론은 큐크로프스를 살려주어 다시 벼락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아스클레피온 병원은 기원전 4세기 이오니아 건축양식으로 건립되어 2세기에 증축되었다고 하는데 정문에서부터 대리석으로 포장된 길이 나있었다.
병원 구내에는 의학도서관을 비롯하여 치료실과 음악요법을 위한 야외 음악당이 있으며, 명상요법을 위한 기다란 통로와 목욕요법을 위한 진흙 목욕실 등도 있다.
돌기둥에 뱀의 형상이 있는데 그리스 신화에서 뱀은 의약의 신 아스클레피우스를 상징한다.
뱀이 껍질을 벗고 새 생명을 얻듯이, 아스클레피우스의 도움으로 사람들이 질병의 껍질을 벗고 새 생명을 얻는다는 데서 나온 상징이다.
2세기에는 베르가모에 해부학을 개척한 유명한 의사 갈렌(Galen)이 살았는데 그의 병리학 연구는 오늘날에도 의학서에 언급될 정도라고 한다.

베르가모는 손으로 짜는 카페트 산지로 유명하므로 우리는 카페트 공장에도 가보았다.
그들의 카페트 짜는 방법은 우리 조상들이 명주나 베를 짰던 것과 같은 방법이며 또한 우리 조상과 마찬가지로 풀뿌리와 잎을 염색원료로 사용했다.
그렇게 염색하여 얻은 색은 변하거나 퇴색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100% 면이나 실크, 또는 혼방으로 짜는데, 한 사람이 하나를 제작하는 데에 크기에 따라 2년에서 4년이 걸린다고 한다.
카페트 생산은 주로 여자들이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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