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서사시의 무대: 트로이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트로이(Troy, 트로아스)는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디세이를 읽은 독자들에겐 친숙하며 성서에 “드로아”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리스도교인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기원전 2000년부터 에게해를 무대로 동방문명과 서방문명의 중간적 성격을 띤 청동기 문명이 일어난 트로이를 크레타, 미케네와 함께 3대 문명의 발상지라 부른다.

트로이 문명의 존재는 19세기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90)의 발굴에 의해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슐리만은 어려서부터 호메로스의 트로이 전쟁에 관한 서사시는 공상적인 작품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시로 쓴 것이라고 믿고, 성인이 된 후 유적을 발굴하여 실증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는 1870년에 트로이로 와서 유적을 발굴하기 시작하였는데, 먼저 트로이 성지를 발견하고 이어서 미케네의 유적 발굴에 나서 미케네 문명의 존재도 확인했다.
그의 발굴은 세계인들에게 하나의 충격이었다.
슐리만의 발굴에 힘입어 곧 한 영국인이 크레타 문명의 유적도 발굴했다.

트로이 유적은 아홉 층의 성지가 퇴적된 것인데 트로이 전쟁은 7층의 성지(城趾) 때 일어난 듯하며, 트로이 성 함락은 기원전 1183년으로 짐작한다.
트로이 성 근처에 로마 시대에 건립되었다고 하는 아테나 신전의 잔해가 남아 있고, 성채 입구에는 최근에 제작된 트로이 목마의 모형이 세워져 있다.
목마는 높게 건립되어 꼭대기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목마 안 양편에 벤치가 놓여 있어 60명 정도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크다.

500m 고지에 위치한 성채에서는 서쪽으로 말마라해, 남쪽으로는 에게해가 보이고, 서쪽 말마라해 건너로 마케도니아가 보인다.
에게해의 섬들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트로이 전쟁 때 아마 그 섬들 뒤에 그리스 연합군이 숨어 있었을 거라고 안내인이 설명해주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으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한 사건을 꼽으면서, 그리스 연합군이 헬레네를 구출하기 위해 트로이 군대와 10년 동안 어리석은 전쟁을 벌였다고 썼다.
그리스 연합군은 아르고스의 왕 아가메논,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 최강의 용사 아킬레우스, 지장(智將) 오디세우스 등이 사령관을 맡았고, 트로이 측은 트로이의 왕 부리아모스, 무적을 자랑하는 제일 왕자 헥토르, 제이 왕자 파리스가 사령관이었다.

그리스 군대는 에게해를 건너 공격을 시작했고, 트로이 군대는 트로이 성을 방어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전쟁은 10년이 지나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무적을 자랑하는 트로이의 용장 헥토르는 매일 진중에 나와 싸움을 걸었는데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
그리스 군대에 헥토르와 대적할 만한 최강의 용사 아킬레우스가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애인을 뺏어간 사령관 아가메논과의 불화로 인해 군령에 불복하고 막사에 칩거한 채 두문불출하였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메논의 독선을 비난하면서 명분이 없는 전쟁이라고 불평했다.

그리스군의 전사자 수는 매일 늘어갔다.
아킬레우스의 여러 친구들이 그의 출전을 권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 바돌로크로스는 아킬레우스에게 갑옷만 빌려주면 나아가서 헥토르와 대전하겠다고 말했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그의 어머니인 여신 데디스가 제우스의 아들이자 올림푸스의 철공의 명인 헤바이스투스에게 의뢰해 만들어준 것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완벽한 무구였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아끼는 갑옷과 투구를 바돌로크로스에게 내주었다.
바돌로크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빌려 입고 그의 창과 방패를 들고 전쟁터로 나아갔지만 헥토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바돌로크로스는 얼마 싸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으며 뿐만 아니라 아킬레우스가 생명처럼 아끼던 갑옷과 투구까지 빼앗겼다.
아킬레우스는 대단히 화가 났다.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은 것만으로도 원통한데 하나밖에 없는 갑옷까지 빼앗겼으니 그는 이젠 전쟁의 명분보다도 우선 설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킬레우스는 바돌로크로스의 시체 앞에서 애도하며 조사를 읊었다.

친구여, 인간이란 얼마나 무정한가.
우리가 트로이를 함락시키고 무훈을 세워 개선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겠다고 부모님께 맹세했는데 자네가 먼저 쓰러지다니!
나도 자네의 뒤를 쫓으리라.
그 전에 너의 원수 헥토르를 쓰러뜨리고 그의 머리와 무구를 되찾기 전에는 자네의 장례식도 하지 않겠다.

아킬레우스는 어머니 데디스 여신에게 부탁하여 헤바이스투스로부터 새로 갑옷을 맞추어 입고 헥토르와 대전하기 위해 전쟁터로 나갈 준비를 했다.
출전에 앞서 상심한 얼굴로 아킬레우스를 찾아온 총사령관 아가메논에게 그는 여태까지의 분쟁은 서로에게 근심만을 초래했을 뿐이니 지난날의 일은 모두 물에 흘려버리고 화해하자고 제안했다.
아가메논도 매우 기뻐하며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승리를 기원하였다.

천하무적을 자랑하는 두 용사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하루 종일 사자처럼 싸웠지만 싸움은 막상막하 끝나지 않았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를 당할 수 없음을 알고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려고 했는데, 아킬레우스가 비호같이 달려와서 그의 앞을 막고 창으로 헥토르의 목을 찔렀다.
헥토르는 쓰러지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승리를 자랑하는 아킬레우스여! 나의 시체를 나의 부모에게 돌려드리고 보상금을 받아라.”
“너의 부친 부리아모스가 황금을 산과 같이 쌓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너의 시체를 부모에게 돌려보내지는 않으리라. 너의 시체는 독수리의 밥이 될 것이다.”
“아킬레우스여, 지금이야말로 너의 마음이 철통같음을 알았다. 그러나 신들의 노하심을 받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의 동생 파리스와 아폴론 신이 너를 쓰러뜨릴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여 설욕했지만 친구를 잃은 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헥토르에게서 피 묻은 무구를 벗기고 그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고 전장을 몇 바퀴 돈 후 진중으로 달렸다.
아름답던 헥토르의 모습이 모래먼지와 피로 물든 진흙으로 뒤덮였다.
성벽 위에서 헥토르의 노부모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헥토르의 시체는 12일 동안이나 진중에 버려진 채로 있었다.

헥토르이 죽은 지 12일째 되던 날 아버지 부리아모스 왕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들을 죽인 원수 아킬레우스의 진영을 찾았다.
만류하는 신하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킬레우스에게도 늙으신 아버지가 계실 것이다. 그도 인간이 아니겠느냐.”
노왕은 아킬레우스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자기 아들을 죽인 무서운 손이었다.
뜻밖에 나타난 노왕을 보자 아킬레우스는 당황했다.
부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에게 말했다.
“오오!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부친을 생각해보시오.
그분도 나와 같이 늙으신 몸으로 가슴아파하시면서 아마도 고향에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실 것이오.
그렇지만 그대가 살아 있음을 전해 들으면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행복해 하시겠지요.
그러나 나에게는 아무 희망도 없구려.
많은 자식들이 전사했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헥토르마저 그대의 손에 쓰러지고 말았소.
지금 내가 온 것은 그대에게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함이니 원컨대 나의 청을 들어주기 바라오.”

노왕의 말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그를 붙들고 함께 흐느껴 울었다.
노왕은 자신의 죽은 아들 헥토르를 생각하고 울었으며, 아킬레우스는 늙으신 부모와 죽은 친구 바돌로크로스를 생각하며 울었다.
아킬레우스는 노왕에게 말했다.
“부리아모스여, 나는 이미 나의 모친으로부터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라는 말씀을 듣고 벌써부터 그의 시신을 돌려보내려고 하던 참이었소.”

아킬레우스는 방에서 나와 시녀에게 명하여 헥토르의 시신을 목욕시키고 아름다운 옷을 입힌 후 시신을 어깨에 메고 나가 노왕의 마차에 실어주었다.
그리고는 노왕에게 만찬을 베풀어주었다.
노왕은 아킬레우스의 친절함에 슬픔도 잊고 그의 정성스러운 대접을 받았다.
향연이 끝나자 아킬레우스는 노왕을 위하여 침실을 제공했고, 헥토르의 장례를 치루는 동안 휴전할 것을 약속했다.
노왕은 아킬레우스의 친절에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노왕은 모두 잠든 후에 종복을 이끌고 아들의 시신을 싣고 아가이아 진영을 탈출했다.

아킬레우스는 온몸의 피부가 가죽처럼 단단하여 화살도 그를 상처 입힐 수 없었지만, 단 하나 발뒤꿈치에 약점이 있었다.
그의 약점을 안 파리스는 다음 전투에서 활을 당겨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쏘아 그를 쓰러뜨려버렸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인간의 약점을 가리켜 ‘아킬레우스의 건(腱)’이라고 하는 것이다.

트로이 군대는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최후의 전략은 지장 오디세우스가 고안한 트로이 목마였다.
그리스 군대는 나무로 말을 만들고 그 속에 특공대 300명을 넣어 트로이 성 밖에 놓고 병선을 타고 후퇴하여 근해의 섬 뒤에 숨었다.
트로이 군대는 그리스군이 후퇴하자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성 밖에는 목마가 있었고 목마에는 “아테나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목마 앞에는 그리스의 낙오병 한 사람이 살려달라면서 울고 있었다.
트로이 병사가 그에게 연유를 물으니 자기가 어젯밤 해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뽑혀 바다에 던져졌는데 헤엄을 쳐서 다행히 살아났다고 했다.
트로이 병사들이 목마를 부숴버리려 하자 그리스 병사는 목마를 가로막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목마는 아테나 여신을 모신 것으로 만일 부순다면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큰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트로이 병사들은 목마를 성 안에 끌어들여 잘 모시고 그날 밤 승전을 자축하는 향연을 열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트로이 병사들이 만취하자 목마 속에 숨어 있던 그리스 유격대원들이 밖으로 나와 성 안에 불을 놓았다.
불을 신호로 그리스 군대는 진격을 개시하여 트로이 성을 함락시켰다.
목마가 높아서 트로이 병사들은 성문을 헐고 목마를 안으로 끌어들였는데 그것도 성문을 헐기 위한 그리스의 술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