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테논 신전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테네의 전성기는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Perikles, 기원전 495∼429년) 시대로 페르시아를 무찌르고 모처럼 평화를 누릴 때였다.
페리클레스는 유능한 정치가였을 뿐 아니라 예술과 학문에 관심이 많아 아테네에 많은 건축물을 지어 아테네를 아름답게 꾸몄다.
그가 재임한 시기를 그리스인들은 황금기로 여긴다.
페리클레스가 전몰자 장송(葬送)에서 행한 연설문을 보면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사랑하지만 사치에 빠져서는 안 되며, 지식을 사랑하지만 유약해져서는 안 된다.
부를 허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행동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하며,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 가난을 면치 못함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 전체가 헬라의 학원이며, 우리는 누구나 모든 행동에 있어서 신체의 건강함과 유연함을 국가를 위한 자재로 사용해야 한다.

아테네의 바위언덕 아크로폴리스에 페리클레스가 기원전 447∼432년에 건립한 유명한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의 유적이 있다.
파르테논은 ‘처녀가 머무는 집’이란 뜻으로 이 신전은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 여신을 위해 건립되었다.
폭이 30.8m이고, 길이가 69.5m이며, 높이가 10.4m인데 도리아 양식의 석주가 46개 세워졌다.
신전의 어느 부분도 직선을 이루지 않는 것이 이 건물의 아름다움이다.
모든 부분들이 완만한 곡선으로 되어 있어 신전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 아름다운 신전을 터키군이 탄약 창고로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그리스군이 차마 신전을 폭파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네치아 군대가 쏜 대포가 신전에 떨어져 사흘 동안 화재가 일어난 적이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UNESCO)는 파르테논 신전을 인류문화재 제 1호로 지정했다.

신전 옆에는 서기 130년에 건립한 아티크오데온 극장이 있는데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내려오면 언덕에 소크라테스가 갇혔던 감옥이 있는 것을 보며, ‘친구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필로파푸 언덕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아레스 신의 언덕’이라는 뜻의 아레오파구스(Areopagus) 광장을 만난다.
기원전 683년부터 매년 귀족 명문가에서 아홉 명의 집정관 아르곤(Archon)이 선출되었다.
아르곤은 임기 일 년을 마친 후 종신 원로원의 회원이 되는데 아레오파구스에 모여서 회의를 했다고 해서 원로원을 아레오파구스 회의라고도 불렀다.

바울로는 아레오파구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내가 아테네 시를 돌아다니며 여러분이 예배하는 곳을 살펴보았더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까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미처 알지 못한 채 예배해온 그분을 이제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도행전 17:23】

오늘날 그리스 인구의 95%가 그리스도교인이며 5%가 이슬람교도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은 15세기 이후로 370년 동안 터키(투르크)의 박해를 받았지만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현재 아테네의 인구는 330만 명으로 그리스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그리스인들의 수가 본토 인구보다 더 많아 1,200만 명에 이른다.
주산업은 해운업으로 세계에서 2위를 자랑하는데 보유하고 있는 선박의 수가 세계 3위이다.
국민 총수입 가운데 해양운수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60%이고 관광수입이 20%이며, 그 외는 교포들이 보내는 송금과 수출로 얻어지는 것이다.
주요 생산품으로는 올리브유, 포도주, 도자기 등이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 병원은 누구에게나 무료이며, 교육은 대학졸업 때까지 무료이고, 은퇴한 후에는 누구나 연금을 받는다.

아테네의 결혼풍습은 특이하여 신부는 집도 장만하고 가재도구도 마련해야 하는 반면, 신랑은 침대 하나만 가지고 오면 된다.
그래서 여권이 아주 강하며, 딸을 낳으면 부모는 딸의 집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하고 아들을 낳으면 그렇게 일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스인들은 출산을 기피하여 매년 인구가 줄어드는 실정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오후 2시가 되면 문을 닫고 낮잠을 자며, 5시에 일어나 다시 문을 열고 장사를 계속한다.
몇 년 전 대통령이 낮잠을 자는 폐습을 없애려고 했지만 국민들의 항의시위에 못 이겨 그 만둔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올림픽 경기장으로 갔다. 1894년에 완공된 경기장은 6만 9,000개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원래 올림픽 경기장은 서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올림피아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졌다.
중세 로마 시대부터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올림픽 경기는 새 경기장에서1896년에 다시 시작되었다.
올림픽 월계관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신화가 전해진다.
아폴론은 다프네라는 처녀를 짝사랑했는데 아폴론이 그녀를 포옹하려고 하자 다프네는 월계수로 변해버렸다.
아폴론은 슬퍼하면서 월계수를 성수(聖樹)로 삼아 나뭇가지로 월계관을 만들어 영웅, 시인, 승리한 경기자에게 씌워주었다.
월계수는 올리브 나무를 말한다.

우리는 대통령 관저를 지나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아테네 대학을 방문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학건물 전면 회랑 벽에는 이 도시의 역사가 벽화로 서술되어 있다.
아테네의 영화를 기록한 벽화의 마지막 부분에 사도 바울로가 설교하는 모습이 있다.
아테네에서의 바울로의 전도가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가 뿌린 복음은 열매를 맺어 아테네는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의 중심이 되었다.
캠퍼스 본관 건물 삼각형 지붕 위에는 제우스가 있고, 오른쪽에 아테나 여신이 있으며, 왼쪽에는 아폴론이 우아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아래에는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석상이 순서대로 세워져 있다.
소크라테스는 턱을 손으로 받치고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포즈인데, 그는 생전에 추운 겨울에도 눈 위에서 한나절을 명상에 잠긴 적이 있었으며, 길을 가다가도 우뚝 서서 오랫동안 명상에 잠기곤 했다고 한다.
아테네 대학이 곧 고대 그리스 학문의 메카이자 예술의 전당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