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게디, 마사다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순례 둘째 날에 당도한 ‘엔게디’는 ‘아이들의 샘’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연중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수와 열대식물들이 ‘죽은 바다’로 불리는 사해와 아주 대조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옛날 다윗이 사울 왕의 노여움을 피하여 엔게디 위의 어느 동굴에 숨어 생명을 보존하기도 했고, 협곡의 동굴에서는 유명한 ‘사해사본’ 성경의 두루마리와 종교의식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엔게디에는 온천 유원지까지 있어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일 년 내내 온천을 즐긴다.
피부미용에 좋다는 사해 진흙으로 온몸을 새까맣게 바르고 사해 바닷가에 서있는 우리 일행의 모습이 절로 웃음 터져 나오게 했다.
사해는 염분의 농도가 보통 바다물의 몇 배나 되어 자유형 헤엄을 치노라면 제대로 되지 않고 뒤뚱뒤뚱해서 보는 이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벌렁 누워 양손과 양발을 물 밖에 내어놓고 배영을 하는 것이다.
그날따라 그곳에서 장거리 경주대회가 있어 도로가 차단되었다.
오후에 가기로 한 마사다에 못 가게 될까 봐서 조바심이 났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통행이 가능해져 마사다로 갈 수 있었다.
엔게디에서 마사다까지의 거리는 약 16km인데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마사다의 난공불락 바위절벽의 위용을 벌써 이십 리 밖에서도 버스 창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안내하는 목사님은 케이블카가 4시 30분에 서비스를 중단하니 속히 케이블카에 타라고 재촉했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케이블카를 타고 고도로 올랐는데 4km 떨어져 있는 사해가 어느덧 발밑에 보인다.
깎아지른 절벽을 거의 직선처럼 올라가는 케이블카 안에서 안내인이 마사다의 위용에 관해 설명했다.
동쪽으로 260m, 서쪽으로 180m로 깎아지른 절벽이 과연 지상 최대의 자연요새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스위스 사람이 제작한 케이블카는 정상에 약 30m 못 미치는 지점에서 정차했다.
그곳에서부터 우리는 절벽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만들어놓은 인공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했는데 옆을 보니 천길만길 낭떠러지여서 현기증이 나고 소름이 끼쳤다.
그저 계단만 보면서 오르는데 절벽 사이로 사람이 만들어놓은 수로가 보였다.
비오는 철에 빗물을 모아 저장하는 물탱크라고 안내인이 설명해주었다.
마침내 우리는 정상에 올랐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는 정상이 뾰족할 것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올라와보니 넓이가 80m2나 되는 광장이었으며, 광장 주위에 돌로 성을 쌓아 방어벽을 만들어놓았다.
우리는 숨 돌릴 시간도 없이 마사다 정상 평면도로 앞에 모여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 설명을 듣는 사람들 모두 숙연해졌다.
올라오면서 감격하고 흥분해서 시끄럽게 떠들던 소리들도 어느새 사라졌다.
기원전 40년 헤로데 대왕이 그곳에 요새를 만들고 소형 별장식 궁전과 로마식 목욕탕 시설을 완비했다.
헤로데 대왕은 자신의 정치적 망명처를 마련해놓은 것이다.
로마 군대가 68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자 유다인 애국자들은 벤 야이르의 지도하에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와 마사다로 와서 로마에 대한 투쟁을 계속했다.
당시 로마의 팔레스타인 주둔군 사령관이었던 제10군단 프라비오스 실바 장군은 마지막 저항지인 마사다를 탈환하여 최후의 승리를 거두려고 했다.
약 오천 명의 정예군을 이끌고 실바 장군 자신이 직접 출전하였으나 지세가 워낙 험해 계속 실패하였다.
실바 장군은 나중에 마사다 주위에 5km에 달하는 외곽 성벽을 구축하고 주야로 지키면서 중요한 지점 약 여덟 곳에다 막사를 설치하고 유대인들이 항복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항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공격을 개시했다.
장군은 수천 명의 유다인 포로들을 강제 동원하여 사해 반대편의 마사다 동쪽 산악지대로 연결되는 지점을 택해서 둑을 쌓아 절벽을 메운 후 정상까지 군마가 올라갈 수 있도록 진입로를 만들었다.
진입로는 몇 년 동안에 걸쳐 유다인 포로들에 의해서 구축되었다.
마사다 요새를 공격하기 시작한 지 5년 후인 72년 최후의 날이 왔다.
유다의 지도자 벤 야이르는 960명 전원을 모아놓고 최후의 날을 맞아 역사에 길이 남을 연설을 한 후 비장한 결심을 밝혔다.
원수들의 손에 죽든가, 아니면 끌려가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자결하자고 외쳤다.
그 길만이 승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로마군은 마사다를 점령할지언정 자신들의 정신만은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고 외쳤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혹은 목을 얼싸안고 하느님께 간구했다.
과연 하느님은 생존해 계십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지켜주시던 하느님은 당신의 성전을 파괴하고, 당신이 택한 백성의 나라를 로마 군대에 넘겨주시고, 최후의 보루 마사다 요새까지 저들의 손에 넘겨주시렵니까?
그들은 열 명을 제비뽑아 그 열 명으로 하여금 950명을 죽이도록 했고, 그 열 명도 자결했다.
실바 장군은 마사다 요새를 공격하는데도 저항이 전혀 없어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요새에 당도하여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그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점령할 수는 없었노라고 말했다.
실바 장군은 시체와 노획한 물자들을 정리하면서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식량창고와 물탱크에 아직도 3년 이상 먹을 수 있는 양식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날의 역사는 오늘의 이스라엘 국민들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으며, 그들의 호국정신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민족혼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군 장교는 임관식과 애국선서를 마사다에서 거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