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왕의 여민동락(與民同樂)
백성과 더불어 즐거워한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맹자가 양(梁)나라 혜왕(惠王)을 찾았다.
왕이 “노인이 천 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우리 나라에 이로움이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맹자는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利)를 말씀하시는고,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맹자는 문왕을 찬양한 시경의 시를 혜왕에게 소개했다.
영대를 짓기 시작하여 땅을 재고 푯말을 세웠더니
백성들이 스스로 몰려와 며칠 안 되어 다 이뤘네.
서둘지 말라고 이르셨건만 백성들은 스스로 몰려들었네.
왕께서 동산을 거니시면 암사슴이 엎드려 잠든 모습
사슴은 살이 쪄서 윤이 흐르고 백조는 학과 같이 희기도 하다.
왕께서 못가를 거니시면 오! 물고기 가득 뛰노는구나.
經始靈臺 經之營之 庶民攻之
不日成之 經始勿炚 庶民子來
王在靈捧 餠鹿攸伏 餠鹿濯濯
白鳥蓮蓮 王在靈沼 於咐魚躍
●『시경』, 「대아(大雅)」편
문왕이 궁에 공원을 만들려고 하니 백성들이 스스로 몰려와서 공원도 만들고 연못도 팠다.
왕은 너무 서둘지 말라고 했으나 짧은 시일에 완공했다.
정원 이름을 영대(靈臺)라 하고 연못 이름을 ‘영소(靈沼)’라고 불렀다.
동산에서는 사슴이 잠을 자고 학이 날고, 연못에서는 고기가 뛰놀았다.
맹자는 문왕이 이 동산을 개방하여 백성들과 함께 즐겼다며 혜왕에게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제안했다.
맹자는 “백성이 함께 망하기를 원한다면, 비록 정원과 연못에 새와 짐승, 물고기가 뛰논다 한들 혼자서 어찌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라고 했다.
그러나 혜왕은 못 들은 척하며 맹자를 그의 궁전 안에 있는 화려한 동산으로 인도하고 연못가를 거닐면서 자랑스럽게 “선생도 이런 것을 좋아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맹자는 위의 시를 인용하면서 “어진 덕이 있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이런 것을 즐길 수 있습니다. 어진 덕이 없는 사람은 비록 이런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즐길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맹자는 옛 성왕 중에서도 특히 문왕을 사모했다.
문왕이 어진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면서 훌륭하게 공원을 꾸미고 백성들과 즐겼다는 것을 읊은 시가 『시경』, 「대아」편에 있는 ‘영대(靈臺)’이다.
영대는 사방 칠십 리에 이르는 규모로, 임금의 거대한 동산인 동시에 온 백성이 같이 즐기는 개방된 국립공원이었다.
문왕은 이 공원을 자기만을 위해서 세운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식처럼 사랑하는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워할 수 있는 여민동락의 영대와 영소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는 맹자가 혜왕에게 민본주의 사상을 설득시키기 위한 예였다.
백성들이 걸(桀)왕을 해에 비유하여
이놈의 해는 언제 없어진담.
우리도 차라리 너와 함께 망하는도다.
●『서경』, 「탕서」편
이 시는 하(夏)나라 백성들이 걸(桀)왕의 학정을 원망한 시이다.
걸 왕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천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하늘이 해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해가 없어져야 내가 망할 것이다”라고 하여, 해가 건재하고 있는 한 자기도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백성들은 그 학정을 원망하여 “이 해는 어느 때 망할 것인가. 우리도 너와 함께 망하리라” 하고 극언했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이렇게까지 원망을 받는대서야 아무리 화려한 궁전과 정원이 있다 하더라도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결국 걸 왕은 민심을 잃고 하늘의 버림을 받았다.
천명을 받은 은(殷)의 탕 임금에게 정복되어 중국 최초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일어났던 것이다.
맹자는 왕에게 민본주의를 강조하고 통치자는 모든 즐거움을 백성들과 함께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왕에게 풍자 섞인 충고를 하면서 문왕은 여민동락했기 때문에 성천자(聖天子)라 불리게 되었고, 걸 왕은 민심을 잃었기 때문에 나라를 잃고 폭군이라 불리게 된 것이라고 했다.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는 여민동락은 문왕의 정치철학인 민본주의를 뜻한다.
백성을 사랑할 줄 모르는 왕은 이미 왕의 자격이 없는 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