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숙제(伯夷叔齊)
악은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백이숙제는 구악(舊惡)을 들추지 아니한 고로
그들을 미워하는 이가 드물었다.
伯夷 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
●『논어』, 「공치장(公治長)」편
백이는 자기가 섬길 만한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았고 사귈 만한 벗이 아니면 벗으로 삼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악한 사람과 서지 않았고 악한 사람과는 더불어 말을 하지 않았다.
자기의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았고 자기의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았다.
세상이 평온하면 나가서 벼슬하고 혼란해지면 물러나와 들어앉은 이는 백이이다. ●『맹자』
백이와 숙제는 그 수절로 예로부터 유명한 인물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네 번이나 백이숙제를 언급하며 칭찬했다.
공자는 “백이와 숙제는 사람의 구악(舊惡)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런 까닭에 사람을 원망하는 일이 없었다. 저들은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다. 또 무엇을 원망할 것인가”라고 했다.
맹자는 백이와 유하혜가 취했던 태도가 서로 상반되는 양극단에 치우치는 행동이었음을 지적하고 그들에게 비판을 가했다.
즉 백이는 너무 편협한 결백 때문에 폐해를 가져왔고 유하혜의 경솔한 처신은 매사에 근신할 줄 모르는 불공(不恭)한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이들은 둘 다 군자가 따를 만한 모범이 못 된다고 말했다.
이때까지 성현으로 정평이 나 있던 백이와 유하혜를 자기 나름대로 평가한 것이다.
다음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 나오는 백이숙제의 이야기이다.
백이숙제는 고죽국의 왕자로서 아버지는 숙제에게 왕위를 잇게 할 생각이었는데 아버지가 죽은 후 숙제는 형인 백이에게 양보했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쫓아야 한다며 왕의 자리를 맡지 않고 도망가 숨어버렸다.
숙제 또한 후의 자리를 맡지 않고 도망가 숨어버렸다.
이렇게 되니 백성들은 셋째 아들을 임금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문왕이 늙은이를 잘 돌본다는 말을 듣고 주나라로 갔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문왕이 죽고 무왕이 뒤를 이었는데, 무왕은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치려는 판이었다.
백이와 숙제는 왕이 탄 말을 손으로 쳐서 멈추게 하고 충고하기를 “부왕이 돌아가신 후 아직 장례도 끝나기 전에 무기를 손에 잡으니 효(孝)라 할 수 있으리요. 신하로서 임금을 죽이려 하니 인(仁)이라 할 수 있으리까?” 했다.
왕의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두 사람을 죽이려 하니 태공이 말하기를 “이들은 의로운 사람이라” 하며 그대로 보냈다.
그 후 무왕은 은나라를 평정하여 주나라를 종주의 나라로 만들었다.
백이숙제는 이를 부끄러운 일이라 하여 신의를 지켜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를 캐어 연명했다.
그들은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러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어 불렀다.
지금 나는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노라.
무왕은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되 그 그릇됨을 알지 못하더라.
신농(神農), 우(禹)의 하(夏)는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렸으니
내 어디로 돌아가리. 아! 가리라 목숨도 이미 지쳤으니.
이 노래와 같이 백이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이 노래를 생각해 본다면 과연 백이숙제가 사람을 원망하는 뜻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늘은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하면 백이숙제는 과연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진 덕을 쌓고 품행을 이같이 조촐하게 하고도 마침내 굶어 죽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성삼문은 사형을 당하면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했다.
수양산 바라보며 백이숙제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 진정 채미라도 하는 것가.
아무리 푸새의 것인들 그 뉘 땅에 났던가.
수양산도 역시 주나라 땅이다.
그러므로 고사리라 하더라도 주나라 땅에서 난 식물이 아닌가?
아무리 절개를 지키려 해도 이러한 모순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백이숙제가 후세에 남긴 교훈은 불의를 일삼는 폭군과 정치인들에게 불후의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