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의 화광동진(和光同塵)
재능을 숨기고 속세에 동화되어 살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전원으로 돌아온 도연명은 무위자연하고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사람들과 별로 접촉이 없는 외로운 생활이었으나 술만 있으면 서로 면식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같이 술잔을 나눴다.
어떤 때는 자기가 주인일지라도 취하면 손님들을 향하여 나는 취하여 잘 터이니 그대들은 그만 돌아가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는 또 음악을 즐겼다.
거문고를 하나 가지고 있었으나 줄이 없었다.
술이 취하면 줄 없는 거문고를 들고 음악에 취하여 흥에 잠겼다.
“내 어찌 거문고 줄에 수고를 끼치랴” 하고 스스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도연명은 사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당시 강주자사(지방장관)였던 왕홍은 그의 인격을 숭배하고 깊이 사귀려고 애썼으나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연명은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는 것은 원래 사교생활에 맞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어떤 명성을 떨쳐보려고 이런 은둔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도연명이 살고 있던 산중에는 선종(禪宗)의 고승들이 모이는 종교단체가 있었다.
석학이었던 승장(僧長)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도연명을 초빙하여 자기들의 단체인 백연사(白蓮社)에 가입시키려고 했다.
도연명은 술을 좋아했으므로 불교의 금주계(禁酒誡)를 깨뜨리더라도 그만은 받아들인다는 조건이었다.
이 단체는 저명한 학자나 시인들도 가입하기 어려운 단체였다.
하지만 막상 단원으로 입단시키려 하자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사퇴를 했다.
도연명이 도망쳐 돌아간 후에도 승장은 매우 호의를 보이며 사귀려 했다.
하루는 가까운 친구 노장파(老壯派) 육수정(陸修靜)과 함께 연명을 술좌석에 초대했다.
이렇게 세 사람이 모이게 되었는데 승장 혜원법사는 불교를, 육수정은 도교를, 도연명은 유교를 대표한 셈이다.
이 절간의 원내에는 호계교라는 다리가 있었는데, 혜원법사는 매일 산보를 하면서 절대 이 다리는 넘지 않는다는 결심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은 혜원법사가 친구 육수정과 더불어 도연명을 전송하다가 너무도 재미있는 이야기에 도취되어 무심히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차!’ 하고 알았을 때 세 친구는 소리 내어 웃었다.
이렇게 웃는 세 노인을 그린 그림을 <호계삼소도>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의 명화로 알려졌다.
즉 이 그림은 무애무우(無碍無憂)한 삼현자(三賢者)의 환담유락(歡談愉樂)의 상징이며, 유·불·도 세 종교가 해학으로 조화되고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연명은 가난한 농부이자 전원시인으로 현명하고 진실 된 삶을 살다가 죽은 사람이다.
참으로 그는 완전무결한 자연에 이르렀고 아직까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조화된 생활에 대한 지성과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다.
또 그 감정과 재능은 감탄할 만한 시인이요, 참으로 자연을 사랑한 철인이었다.
착하면 하늘이 복 내린다 하였거늘
백이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죽었노라.
선과 악이 제대로 응보되지 않거늘
어찌하여 공연한 말만을 내세우는가?
구십 노인 새끼 띠 매고 가난을 지켰거늘
한참 나이에 기한(飢寒)에 굽힐 수 있으랴!
선비 된 몸 곤궁의 절개 아니고서
영원한 후세에 어찌 이름 전하리요. ●도연명, 「음주」
어려서부터 세속에 어울리지 못하고
성품이 본시 산을 사랑했거늘
잘못해서 먼지 속 그물에 빠져들어
어느덧 벼슬살이 십삼 년을 겪었노라.
●도연명, 「전원에 돌아와서」
어려서부터 세속적인 일 밖에서 살면서
오직 거문고와 책만을 생각했노라.
거친 베옷을 입고 즐거웠으며
뒤주가 항상 비어도 태연했노라.
그러나 엉뚱한 운명에 부딪혀
고삐를 돌려 벼슬에 살고자
지팡이 버리고 부임할 채비 갖추고
잠시 전원의 집과 이별했노라.
외로운 배가 아득히 멀리 갈 새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 연연하니
어찌 나의 길 멀지 않으리요.
●도연명, 「처음 참군(參軍)이 되어」
도연명이 벗어나려고 했던 것은 정치였지, 인생 자체는 아니었다.
그는 삶을 사랑했기 때문에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했다.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그에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였다.
전원의 나무들과 동산의 소나무에 대한 애착은 그로 하여금 논리적인 삶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는 삶을 살게 했다.
도연명이 인생의 조화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을 적극적이고 사려 깊은 태도로 대하는 데 있었다.
연명은 인생과의 조화로부터 가장 위대한 중국의 시가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결의는 이 세상에 속하고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으로서 인생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고, 높은 이상을 품고 혼자 걸어가거나 혹은 지팡이를 세우고 밭가는 삶을 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