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오늘 - 김윤철 에세이 1
김윤철 지음 / 지와사랑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굴원의 어부사(漁父辭)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달통하면 나가서 천하를 구제하고,
막히면 물러나 자신을 착하게 살라.
達則 兼善天下 窮則 獨善其身

도연명은 중국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조화되고 완전한 인격을 갖춘 자연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송대(宋代)의 시인으로, 고매한 인격으로 가난을 극복하고 초야에 묻혀서 농사를 지으며 참삶을 사랑한 시인이다.
그는 일찍이 이름을 날려 공을 세워보겠다는 의기도 있었다.
그는 달통하면 나가서 천하를 구제하고, 막히면 물러나서 자신을 착하게 살라고 하는 유가사상에 따라 벼슬에 나갔으나 원래 정직하고 고고한 성격이라 그 생활을 견디기 어려웠다.

한때 지방교육감이라는 높은 지위에까지 올랐으나 13년간의 관리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밭을 갈며 농사로 일생을 마쳤다.
그는 우주만물의 근원인 도는 ‘무위자연(無爲自然)하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한다’는 노자의 도가사상을 따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는 도가사상이 많이 나타나 있다.
도연명은 권농이라는 시에서 스스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살겠다는 신념을 굳히고 있다.

옛 스승 공자께서 가르치셨다.
도를 걱정하지 가난을 근심하지 말라.
쟁기지고 철따라 즐겁게 농사짓고
미소 지으며 농군들에게 격려한다.
해지면 함께 돌아와 술 마시며 이웃과 피로를 푼다.
사립문 닫고 시를 읊으며 농민생활을 즐기리.

다음 시를 통하여 그가 절박한 생활고를 면하기 위하여 욕스러운 벼슬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어찌하여 이렇게 열심히 고생스런 벼슬에 붙어 있는고?
허긴 몸은 매어 있는 듯해도 본래의 뜻은 변함이 없노라.
매일 꿈에 그리는 고향의 전원을 오래 버려둘 수야 있으랴.
마지막 생활은 은둔생활이다. 서리에도 변하지 않는 송백같이 되리라.

소동파(蘇東坡)는 도연명을 이렇게 평했다.

도연명은 벼슬하고 싶으면 나가서 했고 그렇다고 꺼리는 일이 없었다.
또 은퇴하고 싶으면 은퇴했고 그렇다고 고결하다고 자처하지도 않았다.
배고프면 남의 집 문을 두드리고 밥을 찾기도 했으며, 살림이 넉넉하면 닭 잡고 술을 빚어 놓고 손님을 청하여 대접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그의 태도를 높이는 것은 바로 무위자연에 기인한 참삶이라 하겠다.

없으면 구걸하고 있으면 나눠주는 솔직하고 담담한 태도, 즉 참삶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도연명의 인품과 시를 이해할 수도 없고 공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문학은 기교가 아니라 사상이며 덕이므로 시인은 인생을 알아야 한다.

『노자』에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말이 있다.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같이한다는 뜻으로, 자기 재능을 숨기고 속세에 묻혀 동화되어 살라는 말이다.
참으로 도연명은 이와 같이 산 사람이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그의 은퇴생활은 무위도식이 아니었다.
자연에 몸을 맡긴다는 것은 천지의 대덕인 생산에 힘쓰는 일이다.
그는 부지런했고 손수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김을 매며 농사를 지었다.
이것이 이 시인을 더욱 숭고한 전원시인으로 만들어준다.

속세에서 악덕과 타협하여 안일하게 살지 않고 은퇴하되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영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은둔자들은 일도 아니하고 세상을 비웃고 부정적인 공론만 일삼는다.
그러나 도연명은 자연에 몸을 맡기고 흙을 갈며 그의 이상인 무위자연을 실현했다.
그는 29세에 벼슬에 나아가 41세에 관리생활을 청산하며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남기고 고향에 돌아왔다.

그는 55세에 저작랑이란 벼슬에 초청된 일이 있고, 62세에는 강주자사로부터 출사를 요청 받았으나 깨끗이 거절하고 보내온 선물을 모두 돌려보냈다.
이 알차고 깊이 있는 문학 유산이 그의 불우한 삶을 재물로 삼고 승화된 결정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의지할 바 있거늘
나만은 외로운 구름 기댈 데가 없노라.
아득한 하늘에 깜박이며
언제나 길게 빛을 보리.

이 시는 도연명의 고고한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도연명을 잘 이해한 안영지라는 사람은 그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은둔자, 고고한 정신의 소유자, 학문과 생활을 자유롭게 한 사람, 가난하여 손수 밭을 갈아 먹은 선비,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족들과 인(仁)으로써 화목하며, 타고날 때부터 술을 좋아했다.”
주자(朱子)는 도연명을 기념하여 그의 고향에 서당을 세웠는데, 이는 송(宋)대의 대학자와 문호들의 칭찬을 받으며 선비들의 좌우에서 항상 정신의 빛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퇴계 선생도 그에게 심취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