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新羅의 무속巫俗
신라 말로는 무당巫堂을 차차웅次次雄이라 했습니다.
웅雄을 가리켜 무당이라 한 것은 신시神市의 환웅桓雄에서 시작된 것으로 환웅의 신시란 곧 고대 무축巫祝을 말합니다.
제단을 설치하고 하늘에 제사한 까닭에 단군檀君이라 했으니, 단군은 곧 신권찬자神權天子입니다.
단군檀君은 환웅의 아들로 기원전 2333년 아사달(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했습니다.
신라인은 차차웅이 제사를 받들고 귀신을 섬기는 까닭에 이를 두려워하고 공경했으며, 마침내 웃어른을 차차웅이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유어는 삼한三韓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무당을 차차웅이라 한 것은 그 말이 환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환桓과 한寒은 음音이 서로 가깝고 한寒의 훈訓은 차次입니다.
또 신라의 고유어를 한자漢字로 표기할 일이 있으면 훈訓으로 하거나 음音으로 했습니다.
예를 들면 서연산西鳶山을 서술산西述山이라고 한 것입니다.
경주의 서쪽 구간에 있는 서술산西述山은 선도산仙桃山으로도 불리는데, 선도산신仙桃山神 사소娑蘇는 소리개의 안내로 이곳에 와서 머물게 되었으며, 그래서 소리개 연鳶을 써서 서연산西鳶山이라고 했습니다.
선도산에 사는 지선地仙 사소娑蘇는 중구구왕실의 공주였습니다.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배워 해동海東에 와서 오랫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않아, 그녀의 부친이 솔개를 통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녀는 이 솔개의 인도로 선도산에 살게 되었습니다.
신라의 고유어에 연鳶을 가리켜서 술術이라 했으므로 연과 술은 서로 통용됩니다.
연의 훈인 소리개와 술의 음인 술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차차웅은 환웅을 말합니다.
신라 제2대 왕 남해차웅南解次次雄(?-24, 4-24년 재위)은 단지 무당이라는 칭호만 빌렸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곧 제사를 주관하고 신을 섬기는 자였으므로 그 또한 한 사람의 단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라 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기원전 57-기원후 3년 재위)는 진한辰韓 육부인六部人의 추대를 받아 거서간居西干(진한의 말로 왕王)이 되었습니다.
『후한서後漢書』에 따르면 “오로지 마한馬韓 사람만 삼한三韓 전체의 왕王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박혁거세는 반드시 마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한의 여러 국읍國邑들은 각기 한 사람으로 하여금 천신天神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했고, 이를 천군天君이라 했다고 하니 박혁거세도 곧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던 천군이라 하겠고, 천신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은 곧 차차웅(巫堂)입니다.
남해차차웅은 그의 친누이인 아로阿老로 시조묘始祖廟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대개 신라의 풍속에서는 무당이 제사를 숭상하고 귀신을 섬겼습니다.
따라서 아로 또한 무당임이 분명합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차차웅次次雄을 자충慈充이라고도 한다. 김대문金大問이 말하기를 ‘차차웅이란 신라 고유어로 무당을 이른다. 세상 사람들은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므로 두려워하고 공경하여 마침내 웃어른을 자충이라 했다’고 했다.”
김대문金大問은 신라 성덕왕 때의 학자로 『화랑세기花郞世記』, 『고승전高僧傳』 등을 저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