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高麗시대의 무고巫蠱 사건咀呪
무고巫蠱란 주술적呪術的인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남을 해치거나, 저주咀呪하는 술법을 말합니다.
무녀巫女가 저주하는 일은 이미 주周나라와 한漢나라 때의 책에 나타나 있어 그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자 무당이 저주한 것을 고려 충렬왕 때 처음 보는데, 오늘날 세속의 민간에 이 풍습이 아직 존속합니다.
저주와 같은 일은 요사스런 무당에게서 많이 나옵니다.
저주를 속어로는 방자方子라 합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충렬왕忠烈王 2년(1276년) 12월 16일 밤에 누군가 익명으로 투서를 했는데, 정화궁주貞和宮主가 공주(원元나라 공주)를 저주했으며, 또 제안공숙齊安公淑과 김방경金方慶 등 43명이 역모를 꾀한다고 모함한 것이었습니다.
정화궁주貞和宮主는 종실宗室 사도司徒 인의 딸로 1260년(원종 1년) 후일 충렬왕이 된 세자와 혼인하여 정비正妃가 될 수 있는 유력한 위치에 있었지만, 세자가 1274년 원元나라 공주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와 혼인함에 따라 후궁의 자리로 물러앉고 말았습니다.
원나라 공주란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안평공주 홀도로게리미실을 말하며, 1274년 충렬왕과 혼인해 충선왕忠宣王을 낳고, 1295년 제국대장공주로 봉해지고 1297년에 사망했습니다.
제안공숙齊安公淑은 현종의 9대 손이며 정화궁주의 사위입니다.
고려 후기의 장군 김방경金方慶(1212-1300)은 삼별초三別抄의 난亂을 진압하고, 몽고군과 함께 일본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투서로 인해 정화궁주와 숙, 김방경 등이 갇혔으나, 유柳경이 눈물을 흘리며 힘써 간하니 공주가 느끼고 깨달은 바 있어 모두 다 풀어주었습니다.
고려 후기의 대신 유柳경은(1211-89) 최씨 무인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충렬왕 2년(1276년) 12월 24일에 장군 고천백高天伯과 홀랄忽剌대를 원나라에 보내 표表를 올려 말하기를 “저주하는 말은 거짓말에서 비롯된 것임은 성스럽고 밝으신 안목으로 보시면 가히 진실을 아실 것입니다” 운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