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궁중에서 무당을 좋아하다




『고려사高麗史』 「명덕태후전明德太后傳」에 따르면 “어떤 여무女巫가 요사스런 말로 후궁에 드나들며 자못 신뢰와 사랑을 받았다.”
명덕태후는 홍규洪奎의 딸로 충숙왕의 비이며, 충혜왕의 어머니입니다.

「김자수전金子粹傳」에 따르면 “공양왕 때 김자수(1351-1413, 고려 말의 문신)가 ‘음사淫祠를 금하고 여러 무당들이 대궐에 출입하는 것을 엄히 금함으로써 요망함을 끊고 풍속을 바르게 하소서’라 청했다.
충렬왕忠烈王 25년(1299년) 5월, 개경의 무녀 중에서 노래와 춤을 잘하는 사람을 선발해 궁중에 명단을 만들어 두었으며, 고운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히고 말꼬리로 만든 것을 씌워 별도로 1대隊를 만들어 남장男粧이라 칭하고, 새로운 소리를 가르쳤습니다.
새로운 소리란 충렬왕이 지은 「삼장三藏」과 「용사龍蛇」란 노래를 말합니다.

고려 제32대 왕 우왕禑王(1374-88년 재위)이 사냥을 나갔다가 밤에 돌아와 생황苼篁을 불며 노래하고 북 치고 춤추면서 무격놀이를 했습니다.
우왕禑王은 아버지가 공민왕恭愍王이 아니라 신돈辛頓이라 하여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되었습니다.
생황苼篁은 아악에 사용하는 관악기의 일종입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공양왕 때 김자수金子粹가 상소했습니다.
나라에서 굿당(무당巫堂)을 설립한 것도 이미 정도正道에서 어긋난 일인데, 이른바 별기은別祈恩을 하는 곳 또한 10여 곳을 밑돌지 않습니다. 사시의 정기적 제사로부터 수시로 거행하는 별제別祭에 이르기까지 1년 동안의 소비되는 경비는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제사 때에는 비록 금주령禁酒令이 엄하다고 해도, 여러 무당들이 무리를 지어 나라의 행사라고 핑계를 대니 담당 관청에서도 감히 꾸짖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여서 술 마시기를 태연히 하고, 번화한 거리에서 북 치고 피리 불며 노래하고 춤추는 등 못하는 짓이 없으니, 풍속風俗의 아름답지 못함이 이렇듯 심합니다. 바라옵건대 담당 관청에게 밝은 명령을 내리시어, 사전祀典에 기재된 것 이외에는 일절 음사를 금하고 모든 굿당을 철저히 없애주십시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따르면 김자수가 이 상소를 올린 것은 공양왕 3년(1391년) 5월이었습니다.
사전祀典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거행하는 각종 유교식 제사에 대한 규정 내지 기록을 말합니다.
국무당國巫堂은 국가에서 인정한 신당이라는 의미와 국가나 왕실 차원의 의례를 담당하는 무격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별기은別祈恩은 국가제사 이외에 왕실에서 사사로이 복을 기원하는 의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