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무당을 탄압하다
『동국통감東國通鑑』 「고려기」에 따르면 인종仁宗 9년(1131년) 8월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근래 무풍巫風이 크게 일어나 음사가 날로 성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담당 관청에 명하시어 무당의 무리를 멀리 쫓아버리도록 하십시오”라고 하니, 조서를 내려 이를 허락했습니다. 여러 무당들이 이를 근심하여 은병銀甁 1백여 개를 거두어 권력자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권력자가 아뢰기를 “귀신은 형체가 없으니, 그 허와 실은 알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그렇다고 여겨 금지 조치를 완화했습니다.
『동국통감』은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편년체 사서로 서거정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하여 1485년(성종 16년)에 완성했습니다.
일관日官은 추길관의 옛 명칭입니다.
은병銀甁은 고려시대의 은화로 한반도 지형을 본떠 병처럼 만든 것이며, 은병 하나가 쌀 10-50석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최항崔沆(?-1258)이 무격巫覡들을 도성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최항崔沆은 최씨 무인정권의 제3대 집정자였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충숙왕忠肅王 후 8년(1339) 5월, 고려시대 사정기관인 감찰사監察司에서 방榜으로 금령을 게시했습니다.
“무격의 무리가 요사스러운 말로 민중을 현혹시키고 있고, 사대부士大夫가 노래와 춤으로 귀신을 제사하니, 오염이 막심하다. 옛 제도에서는 무격이 도성 내에 살 수 없도록 했으니, 바라건대 각 부에서는 무당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모두 성 밖으로 쫓아내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