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무당을 모아 비를 빌다
고대에는 무당으로 비를 빌었을 뿐만 아니라 무릇 하늘과 땅, 일월과 성신, 산천 제사에서부터 풍백, 우사에 대한 제사에 이르기까지 무당을 쓰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승려와 무당이 기우제祈雨祭를 드렸습니다.
유교, 불교, 도교가 수입된 후부터 승려, 도사, 무격이 신을 제사하는 데 함께 쓰이게 되었습니다.
『국조보감國朝寶鑑』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태종 13년(1413년) 왕이 승정원承政院에 하교하여 말하기를 ‘예로부터 홍수나 가뭄의 재난은 모두 임금의 부덕함이 초래한 바인데, 지금 승려와 무당을 모아 비를 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내가 성인의 경전을 대강 읽었지만 승려와 무당이 거짓됨을 아는데, 지금 도리어 좌도左道에 기대어 하늘이 단비를 내려주기를 바라니 이를 옳다 할 수 있는가’라고 하셨다.”
좌도左道란 그릇된 도, 즉 이단을 말합니다.
『국조보감國朝寶鑑』은 조선왕조 역대 왕의 선정만을 모아 편찬한 편년체의 역사서로 이중 태조, 태종, 세종, 문종 4조의 보감[사조보감]은 1457년(세조 3년) 신숙주와 권람 등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태종 16년(1416년)에 또다시 무당을 모아 우단雩壇에서 비를 빌고 명산에 무당을 보내어 천둥과 벼락을 기양祈穰하며, 18년(1418년) 6월에 서울과 개성에 무당을 모아 사흘 동안이나 비를 빌었습니다.
우단雩壇은 우사단雩祀壇이라고도 하며,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으로 동교東郊 홍인문 밖에 있었으며, 구망句芒, 축융祝融, 후토后土, 욕수蓐收, 현명玄冥, 후직后稷 등의 신을 모셨습니다.
기양祈穰은 자연재해自然災害나 개인의 불행不幸이 발생했을 때 이를 소멸하기 위해 거행한 의례입니다.
성종成宗 때 문신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성현의 수필집)에 기우의식에 대해 논하기를 “성안의 집집마다 병에 물을 담고 버들가지를 꽂았다”고 했고, 『인조실록仁祖實錄』에서는 “마을의 집집마다 물병을 마련하여 버들가지를 꽂아놓으며, 눈 먼 무당이 기원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대체로 불교의 풍속에서 온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대자대비大慈大悲하여 고난을 구제할 때 버들가지로 감로수甘露水를 뿌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물병에 버들가지를 꽂고 승려나 무당이 비를 비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입니다.
조선시대 이래로 무당으로 비를 빈 사실이 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