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 보문寶文을 먼 곳으로 유배하다




『태종실록太宗實錄』에 따르면 태종太宗 13년(1413년) 11월 4일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사복시司僕寺에서 무격을 시켜 말의 신(마신馬神)에게 제사하는데, 이는 음사입니다. 청컨대 마조馬祖(말의 조상신으로 28수(宿) 중 네 번째 별인 방성房星(천사天駟), 마보馬步, 마사馬社, 선목先牧의 신에게 제사하되, 사복시 소속의 관리로 하여금 향을 받아 제사지내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습니다. 
 

사복시司僕寺는 궁중의 가마나 말에 대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입니다. 

마보馬步는 말에게 재앙을 주는 신으로 제사를 겨울에 거행합니다.
마사馬社는 처음으로 말을 탄 사람으로 황제의 신하인 상토를 가리킵니다.
마사에 대한 제사는 가을에 거행합니다.
선목先牧은 처음으로 말을 기른 사람이며, 선목에 대한 제사는 여름에 지냅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태종太宗 18년(1418년) 봄 2월 11일 형조刑曹에서 맹인과 무녀의 처벌을 청하면서 아뢰기를 “맹인 점쟁이는 자기 직업에 정통하지 못하여 성령대군誠寧大君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아뢰었고, 또 국무國巫 가이加伊는 기양祈禳을 하고서도 화를 면하지 못하게 했고, 무녀 보문寶文은 병세病勢를 살피지 못하고 궁궐에서 잡신雜神에게 음사淫祠하여 뜻밖의 일이(성령대군의 죽음) 발생한 데 이르게 했으니, 청컨대 모두 법대로 처치하소서” 했습니다.
성령대군誠寧大君은 태종太宗의 넷째 아들로 용모가 단정하고 총명하여 왕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으나 홍역에 걸려 그 해 2월 4일 14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기양祈禳은 재앙은 물러가고 복은 오라고 비는 일을 말합니다.

임금이 명하기를 “맹인과 가이는 제외하고, 보문寶文은 율律에 따라 죄를 처리하라” 했습니다.
상감께서 형조에 명하기를 “무녀 보문은 3천리 밖으로 유배하는 것을 면제하되 속전을 거두고, 다만 지방에 부처付處하도록 하라” 했는데, 완두창豌豆瘡에 걸렸을 때 굿하는 것을 세속에서 크게 꺼렸기 때문에 죄를 준 것입니다.

이는 완두창, 즉 홍역 때는 굿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도 보문이 굿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속전贖錢은 죄를 면하기 위해 바치는 돈입니다.
부처付處는 중도부처中途付處의 준말로 유배 죄인에게 정상을 참작해 배소配所로 가는 도중 한 곳을 정해 지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완두창豌豆瘡은 완두콩 모양으로 나는 종기입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태종太宗 18년(1418년) 봄 3월 5일 처음 성령대군이 홍역에 걸려 병이 위독했을 때 무녀 보문은 궁중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귀신에게 제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종種(성령대군)이 죽게 되자 누군가가 말하기를 “홍역이라는 병에는 술과 음식으로 귀신을 제사하면 안 된다. 그런데도 보문이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귀신에게 제사지냈기 때문에 이러한 변고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이에 보문을 형조刑曹에 내려 다스리게 했습니다.
이때 사간원司諫院에서 상소했는데, 대략이 다음과 같습니다.
무녀 보문은 재물을 탐하여 사술邪術을 궁중에서 마음대로 행하여 큰 별고를 가져왔으니, 그 죄는 불충不忠에 해당합니다. 청하옵건대 임금께서는 처벌할 수 있도록 재가하십시오. 보문의 불충한 죄는 율에 따라 법대로 처벌하고, 국무당國巫堂 가이 또한 먼 지방에 유배하여 그 죄를 징계하소서.

유정현, 박은 등이 아뢰기를 “보문을 먼 지방에 부처하면 사술을 마음대로 행하여 외방 사람들이 복종할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 가난하고 고생하도록 해서 징계한다는 것이 되겠습니까? 청컨대 먼 지방의 관비官婢로 정하여서 그 악을 징계하소서” 했습니다.
이에 보문을 경상도 울산의 관비로 삼았는데, 미처 가지도 아니해서 성령대군을 따르던 무리들이 보문을 구타해 몰래 죽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