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해의 상징주의
무당의 의상衣裳에 뼈 모양을 흉내 낸 갖가지 철제품 장식이 달리고 부분적으로나마 형해形骸의 외관外觀을 닮은 것으로 미루어 상징주의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형해이든 새의 형해이든 형해의 모방을 시도함은 무복巫服을 입은 자의 입장이 특수함을 분명히 천명하는 것입니다.
시베리아인은 무당을 조상영신祖上靈神들에 의해 죽음을 당한자로 봅니다.
즉 조상영신들이 무당의 몸을 요리하고 그 뼈의 수를 센 뒤 제자리에 되돌려 철사로 재조립하고 그 위에 새 살을 덧입힌 것으로 믿습니다.
수렵민족狩獵民族에게 뼈는 사람의 것이든 짐승의 것이든 생명生命의 귀의처歸依處입니다.
이들은 바로 귀의처인 근원根源에서 그 종種이 다시 형성되는 것으로 믿습니다.
수렵민족이 사냥한 짐승의 고기는 먹되, 그 뼈는 상하지 않게 하고 조심스럽게 주워 모아 관습에 따라 대 위에 안치하거나 나무 위에 두거나 바다에 던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동물의 매장埋葬은 정확하게 인간의 유해를 처리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는, 영혼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궁극적으로 뼈 안에 깃들이고 개체는 바로 그 뼈로부터 부활한다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무복에 나타나 있는 형해는 통과제의通過祭儀의 드라마, 즉 즉 죽음과 부활의 드라마를 간추리고 재현시킨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형해냐, 새의 형해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라는 실체, 신화적인 조상의 의해 보존된 지극히 근본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형해는 어떤 의미에서 무당의 원형archetype을 나타냅니다.
형해는 바로 이 원형에서 조상 무당이 차례로 태어났다는 하나의 가족 관계를 드러내 보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혈통은 뼈로 표현됩니다.
아무개의 뼈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곧 아무개의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새의 형해라는 것도 같은 관념의 변형일 따름입니다.
이 하나의 관념에 두 개의 얼굴이 있는데, 하나는 최초의 무당은 독수리와 여성의 교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당이 새가 되어 날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새처럼 날아서 높은 곳으로 다가간다는 의미에서 무당은 실제로 새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