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키모의 무술巫術




에스키모와 현재의 아시아, 심지어 유럽의 극북極北 민족인 추크치족, 야쿠트족, 사모예드족, 랩족 사이에 문화적 관련이 있으며, 특히 샤머니즘에서 그러합니다.
에스키모 무당 앙가코크는 접신상태에서 신비로운 천상계天上界 비행飛行과 심해深海로의 잠수潛水를 경험합니다.
이 두 가지 경험經驗은 북아시아 무당의 특징적 경험입니다.
에스키모 무당과 천상계의 신격神格 혹은 우주의 주主인 신神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 신이 후일 무당으로 대치되었습니다.
그러나 에스키모 무술巫術과 동북아시아의 무술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라면 동북아시아의 무당과 달리 에스키모 무당에게는 의례용 의상과 무고가 없다는 정도입니다.

에스키모 무당이 하는 중요한 일은 병을 고치는 일, 심해로 내려가 해표모신海豹母神(Takánakapsâluk)에게 사냥감을 넉넉하게 풀어주고 날씨가 좋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일 그리고 불임 여성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에스키모인은 병에 걸리는 것을 금기禁忌(taboo)를 깨뜨렸거나 신성한 것을 훼손했거나 사자死者가 나타나 병자의 영혼을 훔쳤기 때문인 것으로 믿습니다.
금기를 깨뜨렸거나 신성한 것을 훼손해서 병자가 생겼다면 사면이 나서서 집단 고해를 통해 이를 정화시키고 사자가 나타나 병자의 영혼을 훔친 상태가 발생하면 무당은 천상계나 심해로 접신여행을 떠나 환자의 영혼을 데리고 와 그 육신에 되돌려놓습니다.
에스키모의 무당 앙카코크는 접신여행接神旅行 중에 바다 깊은 곳에서 해표모신을 만날 수도 있고 천상계에 사는 신神 실라Sila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무당은 주술적呪術的 비상의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에스키모 무당 중에는 달에 다녀온 무당도 있으며, 날아서 지구를 한 바퀴 돈 무당도 있습니다.
에스키모 무당은 미래를 알기 때문에 예언을 할 수 있고, 날씨의 변화도 읽을 수 있으며, 주술적 곡예曲藝에도 능能합니다.

에스키모 무당은 실라 신에게 날씨를 좋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복잡한 의식을 통해 폭풍을 멈추게도 합니다.
폭풍을 멈추게 하는 무의의 경우 무당은 자기의 보호영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사자의 혼을 부르기도 합니다.
때로는 다른 무당과 의식적儀式的인 싸움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상대방 무당은 몇 차례나 “죽지만”, 죽을 때마다 “부활합니다.”
무당이 겨냥하는 것이 무엇이든 무의巫儀는 한밤중에 온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대서 거행됩니다.
구경꾼들은 이따금씩 고성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무당을 성원합니다.
무당은 영신들을 초혼招魂하기 위해 신어로 오랫동안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다 일단 망아상태忘我常態에 들면 그는 도저히 그의 소리로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높은 기성奇聲을 토해냅니다.
망아상태에서 그가 부르는 즉흥적卽興的인 노래는 무당의 신비체험神秘體驗을 상징합니다.

내 몸은 모두 눈이다.
노라! 보되 두려워 말라!
내 눈에는 상방팔방四方八方이 보인다!”

이런 노래는 무당이 망아상태에 빠지기 전에 경험하는 내적 빛의 신비체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재미거리”로 무당이 천상계나 지하계로의 접신여행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무당은 천상계로 상승할 때는 늘 그러듯이 자기 몸을 꽁꽁 묶게 하고는 영혼만으로 천상계를 날아오릅니다.
무당은 천상계에서 사자들과 오래 대화를 하고는 지상으로 돌아와서는 천상계에서 사자들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 사람들에게 들려줍니다.

에스키모인은 사자가 가는 곳을 세 곳으로 상정합니다.
천상계天上界, 땅거죽 바로 밑에 있는 명계冥界(지하계地下界), 그리고 아주 깊은 곳에 있는 명계입니다.
천상계에서는 사자들이 명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쁨과 번영을 누리며 행복하게 삽니다.
지상의 삶과 다른 점은 계절이 지상과는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지상이 겨울이라면 천상계와 명계는 여름인 것입니다.
그러나 땅거죽 바로 밑에 있는 지하계는 절망과 기근이 지배하는 세계로 금기를 범한 죄인, 이승에서 사냥솜씨가 형편없던 사람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무당은 이 세 세계를 두루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사자가 혼자 가기 싫어서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유괴해가는 일이 생겨도 무당은 어디로 가야 유괴당한 영혼을 찾아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무당의 타계他界 여행이 사망死亡 직전에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한 경직증적硬直症的인 망아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수도 없지 않습니다.
어느 알래스카 무당은, 자기는 죽은 상태에서 이틀 동안이나 사자의 길을 다녀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먼저 간 사자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길이 잘 다져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 길을 걸으면서 끊임없는 곡소리, 절규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는 사자를 위한 산 사람들의 곡소리이자 절규하는 소리였습니다.
이윽고 그는 자기가 살던 마을과 똑같은 커다란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마을에 이르자 두 망령亡靈이 나타나 그를 한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집안에는 모닥불이 지펴져 있었으며 불 위에는 고깃덩어리가 익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고깃덩어리에는 눈이 있었고 그 눈은 무당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는 뜻으로 사소한 하나하나의 동작이나 행동을 이르는 말)을 감시監視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집안으로 안내한 망령은 그 고기에 손을 대지 말라고 했는데, 사자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은 두 번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 마을에서 한동안 쉰 무당은 다시 여로에 올라 은하수에 이르러 꽤 오랫동안 은하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자기 무덤 있는 곳으로 내려왔습니다.
일단 자기 육신으로 영혼을 되돌린 무당은 되살아나 무덤을 떠나 마을로 와서는 그동안 자기가 겪은 일을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에스키모의 무당은 반드시 몸을 꽁꽁 묶게 한 뒤 영혼만으로 접신여행을 떠납니다.
몸을 묶어두지 않고 육신과 함께 떠났다가는 영영 되돌아올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당에게 접신여행을 필요로 하는 것은 접신의 경지에 들어야만 자기 본연의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신비체험이 자기의 진정한 인격을 형성시키는 데 필요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에스키모의 무당은 망아상태에 들기 직전에 물속으로 뛰어드는 듯한 몸짓을 합니다.
지하계 하강을 할 때도 무당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바다 표면으로 떠오르는 듯한 몸짓을 보여줍니다.
무당을 일컬을 때 자주 사용하는 말도 ‘바다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자’입니다.
무당의 해저 잠수행위는 시베리아 무당의 의상에도 상징적象徵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시베리아 무당의 의상에는 오리발, 잠수하는 새의 그림자 따위가 그려져 있습니다.
무당이 해저로 내려가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해저가 바로 동물의 대여신大女神을 신화적神話的으로 표상表象하는 해표모신이 사는 곳이자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원형이기 때문입니다.
에스키모는 이 신의 선의에 힘입어 이 세상을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무당은 정기적으로 해저로 내려가 해표모신과의 정신적 접촉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에스키모 사회의 종교생활과 무당의 신비체험에서 해표모신은 그만큼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천상계의 절대신絶對神(manito)으로 큰 바람과 큰 눈을 보내는 날씨의 지배자인 실라 신에 대한 신앙이 소흘한 것도 아닙니다.

해저로의 접신여행에는 일련의 장애물障碍物이 등장하며 이 장애물은 입문의례의 시련試鍊과 매우 흡사恰似합니다.
쉽게 지날 수 없는 관문, 머리카락 같이 가는 다리, 명계冥界의 개(犬), 화가 나 있는 신을 회유하는 등의 모티프는 입문의례에는 물론이고 타계他界로의 신비여행의 줄거리를 이루는 모티프입니다.
입문의례에 등장하든 타계로의 신비여행에 등장하든 이런 모티프는 존재론적인 차원의 돌파를 의미합니다.
이런 시련을 극복하기 때문에 그 행위 주체는 인간조건을 초월한, 즉 영신과 동일시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무당은 영신이므로 그런 시련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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