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은 독일을 떠나겠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의 가장 기억에 남는 연설은 그가 신新역사회에서 했던 낭랑한 평화주의 요구였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반전과 군복무거부”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는 용감한 2퍼센트에 대한 유명한 요구의 발언을 했다.
“소심한 사람은 ‘무슨 소용이 있겠어? 우리는 감옥에 가게 될 거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는 군복무를 해야 하는 사람들 중에서 2퍼센트만 전쟁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한다면 ... 정부는 무기력해질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감히 감옥에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의 연설은 곧바로 반전선언문이 되었으며, 단순히 2퍼센트만이라고 새겨진 단추가 학생과 평화주의자들의 옷깃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는 그 이야기를 1면에 싣고 연설문 전체를 보도했다.
뉴욕을 떠나던 날 아인슈타인은 다시 히틀러에 대해서 질문을 받은 그는 만약 나치가 권력을 잡게 되면 독일을 떠날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인슈타인의 배는 파나마 운하를 통해서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아인슈타인은 쿠바 지역의 과학원에서 강연을 했다. 그런 뒤 파나마로 갔다. 그곳에는 취리히폴리테크닉 졸업생으로 밝혀진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혁명이 무르익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곳의 관리들은 아인슈타인에게 훌륭한 환영식을 열어주었으며, “문맹의 에콰도르 인디언이 여섯 달에 걸쳐 짠” 모자를 선물로 받았다. 크리스마스에는 배의 무선 라디오를 통해 미국으로 성탄인사를 방송했다.
1930년 마지막 날 아침에 배가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을 때 십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그중 두 사람은 갑판에 서둘러 오르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제목을 착용한 500명의 여학생들이 갑판에 늘어서서 그를 위해 세레나데를 불렀다. 연설과 수여식으로 채워진 화려한 축하연은 4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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