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아인슈타인의 별장을 급습했다



베를린에서 아인슈타인의 친구이자 주 뉴욕 독일 영사 파울 슈바르츠가 개인적으로 그를 만나 독일로 돌아가지 말 것을 설득했다.
그는 “그들이 선생의 머리채를 잡고 거리로 끌고 다닐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인슈타인은 1933년 3월 중순에 배를 타고 벨기에로 갔다.
그는 다음 해에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에 고등연구소가 문을 열면 매년 4~5개월을 그곳에서 보낼 예정이었다.
출항 하루 전에 그와 엘자는 프린스턴으로 가서 그들이 구입할지 모를 집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대서양을 가로질러 항해하는 동안에 아인슈타인은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의 무기은닉처를 찾는다는 핑계로 그의 별장을 급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기은닉처란 있지도 않았다.
훗날 그들은 되돌아와서 밀수에 사용될 수도 있다는 핑계로 그가 좋아한 보트를 압수했다.
카푸트 별장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으로 아인슈타인과 조국 독일의 관계는 결정되었다.
그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1933년 3월 28일 그의 배가 안트베르펜에 정박한 직후 그는 차를 타고 브뤼셀에 있는 독일 영사관으로 가서 자신의 여권을 반납하고 자신의 독일 국적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항해 중에 작성한 사직서를 우편으로 프로이센 과학원으로 발송했다.

19년 전 그를 과학원으로 초빙한 막스 플랑크는 안도했다.
플랑크는 “선생의 그런 생각이 선생이 과학원과의 관계를 명예롭게 단절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라면서 “우리의 정치적 의견을 갈라놓은 깊은 바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우호적인 관계에는 어떤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라는 너그러운 말도 덧붙였다.
플랑크는 과학원의 간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인슈타인에 대한 공식적인 추방절차를 시작하는 것은 내게 가장 심한 양심의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정치적 문제에서는 깊은 바다가 그와 나 사이를 갈라놓고 있지만, 나는 앞으로 수백 년 동안의 역사에서 아인슈타인의 이름은 과학원을 빛낸 가장 밝은 별 중 하나로 찬양될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합니다.”

나치는 공개적으로 신문에 크게 알리면서 국적과 과학원 회원 자격을 포기한 아인슈타인의 행동에 분노를 표시했다.
나치에 동조하는 과학원 간사는 나치를 대신해서 성명을 발표했다.
그 성명은 매우 신중했던 미국에서의 발언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인용하면서 아인슈타인이 “잔악한 일당에 참여”하고 “외국에서 선동가로 활동한 것”을 비난하며,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사퇴에 대해서 유감스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인슈타인의 오랜 적이었던 노벨상 수상자 필리프 레나르트는 나치 신문에 “자연을 연구하는 데 끼친 유대인들의 위험한 영향을 증명해주는 가장 중요한 예가 바로 아인슈타인 씨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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