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가 그 정도 가치가 있는 줄 몰랐어!”
원양 정기선의 항로 문제로 벨기에에 남게 된 아인슈타인과 엘자, 헬렌 듀카스, 발터 마이어를 포함한 측근들은 벨기에에 임치거처를 마련했다.
아인슈타인은 오스탕 부근의 휴양지인 르코크 수메르의 모래언덕에 집을 임대했다.
신문들은 그의 이름이 암살대상자 명단에 들어있고 그의 머리에 5천 달러의 현상금이 걸렸다고 보도했다.
그 소식을 들은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면서 “내 머리가 그 정도 가치가 있는 줄 몰랐어!”라고 유쾌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벨기에 사람들은 그런 위험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두 명의 뚱뚱한 경찰관이 집 앞에 경계를 섰다.
그해 여름 프라하에서 아인슈타인의 예 자리와 사무실을 지키던 필리프 프랑크가 우연히 오스탕을 자나다가 갑작스럽게 그를 방문했다.
그는 그곳 주민들에게 어떻게 아인슈타인을 찾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 정보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곧바로 모래언덕 사이에 있는 집으로 안내되었다.
훗날 프랑크는 “두 남자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몸을 던져 나를 붙잡았다”고 술회했다.
아인슈타인이 자유계약자가 되자 유럽 전체에서 제안이 쏟아져 들어왔다.
제안들이 매력적이었고 그가 우쭐해졌던 이유도 있었으나 조수 발터 마이어에게 더 나은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부분적인 이유였다.
더욱이 그런 제안들은 독일 학자들이 대하는 나치의 정책에 대한 그와 여러 대학들의 저항이기도 했다.
4월에는 그가 마드리드의 자리를 수락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뉴욕 타임스』는 “스페인 장관, 물리학자의 교수직 수락 발표”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프린스턴의 일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플렉스너에게 마이어를 새 연구소의 부교수가 아니라 정교수로 채용해주지 않으면 영향이 있을 수고 있다고 경고했다.
플렉스너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4페이지에 이르는 편지에서 그는 아인슈타인에게 한 사람의 조수에게 너무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일이 나쁘게 진행될 경우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런 후 그는 마이어의 직함은 부교수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종신 교수직을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