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에렌페스트가 총으로 자살했다




아인슈타인은 당분간은 절대적인 평화주의와 군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보장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평화운동에 대한 자신의 지원을 원했던 네덜란드 각료에게 “극단적인 평화주의 운동의 계획을 주장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독일이 재무장하고 있는 마당에 프랑스인이나 벨기에인에게 군복무를 거부하라고 주장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는 국제연맹과 같은 세계연방 조직을 요구하는 노력을 강화했다.
그는 “현재의 상황으로는 우리가 모든 군대를 철폐하도록 주장하기보다는 초국가적 군대 조직을 지원해야만 할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의 사태가 내게 그런 교훈을 주었다”고 했다.

영국 사령관 올리버 로커-람프슨은 아인슈타인을 의회의 야당의원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던 윈스턴 처칠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들은 처칠의 집인 챠트웰의 정원에서 점심을 함께 하면서 독일의 재무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로커-람프슨은 아인슈타인을 또 다른 재무장 옹호자였던 오스틴 체임벌린과 전 총리 로이드 조지에게도 데려갔다. 

로커-람프슨은 다음 날 흰 린넨 옷을 입은 아인슈타인이 방문객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유대인에게 국적의 기회를 확대하는’ 법안을 화려하게 의회에 제안하면서 그 일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그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아인슈타인은 절망적인 소식을 들었다.
부인과 동료들과 헤어진 그의 친구 파울 에렌페스트Paul Ehrenfest(1880~1933)가 다운 증후군으로 암스테르담의 병원에 있던 열여섯 살 난 아들을 방문하러 갔다.
그는 총을 꺼내 아들의 얼굴을 쏘고, 눈알을 꺼냈지만 아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런 뒤 그는 총으로 자살했다. 

20여 년 전 방황하던 오스트리아의 젊은 유대인 물리학자, 수학자 에렌페스트는 아인슈타인이 일하고 있던 프라하에 나타나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날 몇 시간 동안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물리학에 관한 대화를 한 뒤 두 사람은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그가 “자신감이 결여된 환자에 가깝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기보다는 현재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에 뛰어나다고 했다. 그는 그의 “무능하다는 인식은 객관적으로 정당하지 않았지만 그를 병들게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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