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자가 사망하자 아인슈타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엘자가 1936년 12월 20일에 사망했다. 아인슈타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울었다.
엘자가 사망한 후 헬렌 듀카스와 양딸 마르고트와 함께 살았고 곧 이어서 그의 여동생이 이사를 왔다.
1937년 10월에 한스 알베르트가 3개월 동안 체류할 계획으로 미국에 왔다.
아인슈타인은 밀레바 마리치에게 자신이 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려주었다.
그는 “한스가 정말 훌륭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아내를 데리고 있다는 것이 불행한 일이지만 그가 행복하다면 어쩌겠습니까?”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다음 해에 한스와 그의 아내 프리다 크네흐트에게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서 미국에서 살도록 요구했으며, 그들은 그렇게 했다.
한스 알베르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클림슨에 있는 미국 농무부의 시험장에서 토양보존을 연구하는 일자리를 얻었고, 그곳에서 하천에 의한 퇴적 운반의 권위자가 되었다.
그는 아내의 영향으로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도가 되었다.
종교적 이유로 건강관리를 거부하는 관행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몇 달이 지난 후 여섯 살 된 아들 클라우스가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었다.

에두아르트는 정신병자였기 때문에 미국에서 이민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병이 깊어지면서 그의 얼굴이 부어올랐으며, 말이 느려졌다.
마리치는 그를 집으로 데려오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고, 그가 요양소에 머무는 기간은 더 길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