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에게 이스라엘의 대통령직을 권하다




1921년에 아인슈타인을 미국으로 데려온 끈기 있는 시온주의자 카임 바이츠만이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은 총리와 각료들에게 대부분의 권력이 주어진 체제에서는 명예롭기는 하지만 형식적인 자리였다.
바이츠만이 1952년에 타계하자 예루살렘의 신문들은 아인슈타인이 그의 자리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총리였던 다비드 벤구리온은 여론의 압력에 굴복했고, 아인슈타인에게 요청이 갈 것이라는 소문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바이츠만이 타계하고 1주일이 지난 후 『뉴욕 타임스』에 실린 작은 기사에서 그 소식을 처음 보았다.
처음에는 그와 집에 있던 여성들이 모두 웃어넘겼지만 기자들이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손님에게 “이건 정말 거북합니다. 정말 거북한 일입니다”라고 했다.
몇 시간 후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인 압바 에반으로부터 전보가 도착했다.
그 전보는 대사관에서 공식으로 그를 면담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내가 거절한 텐데 왜 그 사람이 그렇게 먼 길을 와야 하나?” 하고 한탄했다.

헬렌 듀카스는 에반 대사에게 전화를 하는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아인슈타인이 전화를 했고, 에반은 “저는 선생님이 전화로 거절했다고 정부에 보고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행동을 해서 공식적으로 제안을 전달해야만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에반은 결국 보좌관을 보내 아인슈타인에게 대통령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는 공식 편지를 전달했다.
에반의 편지는 “수락하시면 이스라엘로 이사를 가서 시민권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에반은 서둘러 아인슈타인에게 “선생님의 일이 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정부와 국민은 선생님의 위대한 과학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즉 대통령직은 그의 존재가 필요할 뿐이지 실제로 일은 많지 않다는 뜻이었다.

거절편지를 준비해놓은 아인슈타인은 에반의 특사가 도착한 즉시 그 편지를 전달했다.
방문객은 “저는 평생 변호사로 살았지만 제가 설명도 하기 전에 반박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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