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神祀의 폐단弊端
요즈음 사람들은 귀신鬼神을 다투어 믿으며, 무릇 길흉화복吉凶禍福에 대해 한결같이 무당巫堂의 말만 듣고 화상畵像을 그려놓거나 돈을 걸어놓기도 하고, 영혼靈魂을 맞이하여 집안에 들이기도 하며, 공창空唱을 추종하기도 하며, 직접 성황城隍에 제사도 지내며, 노비奴婢를 바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 조정에서 금하는 바로서 『경제육전속전經濟六典續典』에도 실려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그 폐단弊端을 깊이 아시고, 또 법을 집행하는 관부(형조, 한성부 등을 가리킴)로 하여금 무당을 모두 찾아내어 도성 밖으로 내쫓게 하셨습니다.
엎드려 보건대 요즈음 금하는 법령이 차츰 해이해짐에 따라, 성 밖으로부터 점점 다시 들어와 부인들을 유혹하고 술과 음식을 낭비시키면서 혹은 액厄(불행한 일)을 물리친다 혹은 병을 구제한다 하니, 비록 대가大家와 거실巨室이라 하더라도 이들을 불러들여 다투어가며 올바르지 못한 행위를 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그런데도 이로 인하여 한 사람이라도 죄를 받았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으며, 북 치고 피리 불며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길거리나 저자 사이에 끊이지 않고 있으니, 이것은 신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면서 가르치면 따르고 말로만 가르치면 다투게 된다 했고, 위에서 명령하는 바가 좋아하는 것에 반대되면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성수청星宿廳이 아직도 도성 안에 있고, 기은사祈恩使가 봄가을로 끊이지 않으니, 이렇게 하면서 백성만 못하게 한다면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은사祈恩使는 정식 국가제사가 아니라 왕실에서 사사로이 복을 비는 별기은別祈恩을 위해 파견한 사신을 말합니다.)
신들이 일찍이 기은사의 행렬行列을 보니 서울에서 개성까지, 개성에서 적성積城, 양주楊洲의 경계까지 가는데, 말을 탄 사람은 수십 명이 넘고, 그 노복과 짐꾼은 그 배나 되었습니다.
이들이 혹은 가든지, 혹은 머물면서 머뭇거리고 떠나지 않으면 수령들이 몸을 구부리고 숨을 죽이며 오직 은근하게 맞이하여 혹은 음식물을 후하게 주고, 혹은 뇌물賂物을 주면서 만에 하나라도 견책을 당할까 하여 비록 절하고 무릎 끓는 것일지라도 사양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폐단의 큼이 이보다 더할 수가 없습니다.
또 성수청 같은 것은 어떤 귀신이며 어떤 제사입니까?
귀신도 분명한 귀신이 아니고, 제사도 올바른 제사가 아니니, 이 또한 임금님의 정치를 위해 마땅히 먼저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과단성 있는 정치를 행하시어 풍속을 정돈하고 간사스럽고 음란하고 요망한 것들로 하여금 임금님의 고명한 덕 아래에서는 용납되지 않게 하소서.
이 또한 신들의 소망입니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 따르면 성종成宗 9년(1478년) 11월 30일 홍문관弘文館 부제학副提學 성현成俔 등이 상소했는데,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