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묘孔子廟의 뜰에서 무당이 음사를 행하다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에 따르면 성종成宗께서 문선왕묘文宣王廟를 배알하고 돌아와서 편찮으셨다.
『오산설림초고』는 차천로(1556-1615)의 수필집으로 한국과 중국의 시화詩話, 일화逸話 등을 모은 것입니다.
문선왕묘文宣王廟는 공자孔子의 사당祠堂으로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成均館에 있었으며, 문묘文廟라고도 합니다.
시화詩話는 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화逸話는 세상에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정희왕대비貞熹王大妃가 이를 걱정하여 무당들에게 물었더니, 모두들 “공자묘孔子廟의 귀신鬼神이 빌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정희왕대비貞熹王大妃(1418-83)는 세조世祖의 왕비王妃이며 성종成宗의 할머니로 예종睿宗 사후死後, 형 월산대군을 제치고 동생인 성종을 왕으로 옹립했으며, 7년 동안 수렴청정垂簾聽政했습니다.
정희왕대비는 궁녀宮女에게 명하여 무당을 이끌고 대성전大成殿 뜰에서 음사淫祠를 행하게 하니, 여러 무당들이 번잡을 떨었고 여러 가지 기교를 어지러이 부렸습니다.
대성전大成殿은 문묘文廟의 중심 건물로 공자孔子와 4성聖, 10철哲의 위패位牌를 모신 곳입니다.
성균관成均館 유생儒生 가운데 선비의 기상이 있는 사람이 앞장서서 유생들을 이끌고, 무당들을 내쫓고 장구와 여러 악기를 방망이로 때려 부셨습니다.
궁녀들이 놀라 흩어졌고, 달려가서 정희왕대비에게 이를 고했습니다.
정희왕대비는 크게 노하여, 장차 모든 유생들을 하옥시키고자 하여, 지관사知館事 이하 모든 유생들을 대궐 앞에서 명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지관사知館事는 성균관의 총책임자로 홍문관弘文館의 대제학大提學이 겸임했습니다.
정희왕대비가 사람을 시켜 성종成宗에게 고하기를 “전하께서 편치 못하셔서 무당들에게 물어보니 모두가 빌미는 공자묘에 있다고 했으므로 궁녀에게 명하여 기도하게 하였는데, 여러 유생들이 대역무도大逆無道하게도 무녀들을 때리고 궁녀들을 협박해 쫓아내었으며 모든 제구祭具들을 발로 차 부수었으니, 이들은 임금도 아비도 없는 놈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모두 죽이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성종成宗은 베개를 밀치고 벌떡 일어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태학太學(성균관)의 생도들이 이렇듯 의리와 절개가 있구나” 했습니다.
마침내 사옹원司饔院에 명하여 음식을 준비하게 하고, 지관사 이하 여러 유생들을 들어오게 하여 근정전勤政殿 뜰에서 잔치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사옹원司饔院은 궁중음식을 담당하는 관청입니다.
근정전勤政殿은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고, 즉위식 등 국가의 공식적인 대례를 행하던 곳입니다.
조하朝賀는 조의진하朝儀陳賀의 줄임말로 정월 초하루, 동짓날, 그리고 매월 초하루, 보름 및 왕과 왕비의 생일에는 왕세자를 비롯한 백관百官이 조하했습니다.
조하의 장소가 경복궁일 때는 근정전, 창덕궁일 때는 인정전에서 베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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