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영혼을 위해 길 귀신鬼神을 내리게 하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말했습니다.
“『춘관春官』에 ‘사무司巫는 상사喪事 때에 무강巫降의 예를 맡는다’ 했고, 주註에서는 ‘강降은 내린다는 뜻으로 무당이 신을 내리게 하는 의례이다. 지금 세상에서 사람이 죽어 염습殮襲을 한 뒤에 무당巫堂에게 가서 길 귀신鬼神을 내리게 하는 것이 그 예제의 흔적[유례遺禮]이다’라 했다. 그러나 이는 성인의 뜻이 아닐 것이다. 내가 보건대 시골 무당이 노래와 춤으로 혼령을 부르고 망혼亡魂의 말을 흉내 내면서 어리석은 풍속을 속이고 재물을 빼앗으니, 나라에서 마땅히 법으로 금지하여 없애야 하는 것인데, 어찌 도리어 경전에 수록했겠는가. 또 보건대 우리나라 풍속이 귀신 섬기기를 좋아하여, 그중에 만명萬明이라는 것이 있는데, 곧 신라 김유신의 어머니이다. 이것은 반드시 가운데가 볼록한 큰 거울이다. 또 왕신王神이 있다고 하는데, 왕신이란 수로왕首露王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는 왕王이 가장 영험靈驗하고 신이함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신을 섬기는 자가 반드시 철익의綴翼衣를 입는데, 철익이란 지금 무사들이 입는, 저고리와 바지가 서로 연결된 것으로, 허리춤에 주름이 있는 것은 현단玄端과 같고, 양쪽 겨드랑은 한데 꿰매어져 있는 것이 심의深衣와 같고, 넓은 소매에는 끝동이 없는 것은 난삼爛衫과 같다. 이 거울과 옷은 반드시 당시의 제도로서 지금까지 전해온 것이다.”
『춘관春官』은 『주례周禮』의 편명으로 국가의 예제禮制를 담당하는 관직들에 대해 설명한 부분입니다.
사무司巫는 무관巫官의 장長으로 무사巫事를 총괄했습니다.
주註는 후한後漢의 경학자 정현鄭玄(127-200)의 주석을 말합니다.
염습殮襲은 사자死者의 몸을 씻긴 뒤에 옷을 입히고 염포로 묶는 일을 말합니다.
왕신신앙王神信仰은 충남지역에서 주로 확인되는 것으로 왕신王神은 일종의 가신家神입니다.
그러나 모든 가정에서 모시는 것은 아니고, 모시는 가정이 따로 있습니다.
왕신은 집안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관장하기 때문에 집안의 대소사大小事를 반드시 먼저 왕신에게 고해야 합니다.
왕신의 신체는 주로 곡식이나 옷감을 넣은 항아리나 단지입니다.
수로왕首露王(42-199)은 금관가야의 시조입니다.
철익의綴翼衣는 철릭綴翼 혹은 천익天翼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무신들이 입던 공복公服이며, 전시에 왕을 호종扈從할 때는 문신들도 입었습니다.
저고리와 치마가 붙은 형태의 겉옷으로 길이가 길고 허리에는 주름을 잡았습니다.
소매는 두리소매이고 고름을 달았으며, 곧은 옷깃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교차시켜 앞을 여미었습니다.
당상관堂上官은 남색을, 당하관堂下官은 홍색을 입었습니다.
현단玄端은 검은색 상의로 소매가 정직단방正直端方하다는 데서 유래한 명칭名稱입니다.
심의深衣는 상의上衣와 하의下衣가 연결된 웃옷으로 흰 천으로 만들고 옷 가장자리에 검정 비단으로 선을 둘러댔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유학자들이 선호했으며, 심의를 착용한 초상화가 많이 남아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난삼爛衫은 남색이나 옥색 비단으로 만든 웃옷으로 깃이나 소매 끝에 청흑견靑黑絹으로 단을 둘러댔습니다.
유생儒生, 진사進士, 생원生員들이 주로 입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