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때 궁중의 무고巫蠱
1613년(광해군 5년) 광해군光海君과 대북측大北側이 영창대군永昌大君과 김제남金悌男을 몰아낼 때 구실의 하나가 된 것은 영창대군의 생모 인목대비仁穆大妃의 광해군 저주사건이었습니다.
김제남金悌男(1562-1613)은 선조의 장인이며 인목대비의 아버지로 인목대비의 소생인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한다는 혐의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광해군은 후궁後宮 소생이었지만 부왕父王 선조宣祖에게 적자가 없었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공을 세워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그러나 서출庶出의 광해군에게 상당한 심리적 위협이 된 것은 선조가 만년에 김제남의 딸 인목왕후를 계비繼妃로 맞이하여 낳은 영창대군이었습니다.
따라서 광해군과 광해군의 집권 기반인 대북측은 영창대군 세력의 제거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차에 박응서, 서양갑 등 양반의 서출들이 무륜당을 조직하고 강도짓을 하다가 1613년 4월 체포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이첨 등 대북측은 이 사건을 김제남의 사주에 의한 영창대군 추대 모의로 조작하여, 많은 사람들을 이 사건에 연루시켰으며, 결국 그해 6월 1일 김제남을 사사했습니다.
다음으로 영창대군 제거를 위해 인목대비측이 각종 무고巫蠱를 한다는 혐의를 씌웠습니다.
인목대비가 무고를 한다는 소문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1607년(선조 40년) 선조宣祖가 병들자 그 원인이 죽은 의인왕후에 있다 하여 의인왕후懿仁王后의 무덤인 유릉裕陵에 대해 저주를 했다든지, 1612년(광해군 4년) 강아지와 쥐를 불로 지져 광해군光海君을 저주했다든지, 이이첨의 사위 박자홍에게 베개를 선사하면서 사람의 뼈나 관 조각을 넣었다든지 하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건화 되지 않고 있다가, 이때 의인왕후의 조카인 박동량朴東亮이 인목대비 측의 유릉 저주를 문제로 제기했고, 김제남의 측근으로부터 인목대비측이 고성이라는 소경 점쟁이와 교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고성을 집중 추궁하고, 또 많은 무녀巫女와 궁녀宮女들을 조사해 인목대비측이 광해군을 저주했다는 자백을 얻어냈습니다.
그래서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유배하는 한편,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했습니다.
의인왕후懿仁王后는 선조宣祖의 왕비로 1569년(선조 2년)에 왕비王妃로 책봉冊封되었으나 1600년(선조 33년) 46세로 승하했습니다.
“유릉裕陵에 대해 저주”란 선조宣祖가 병중이었을 때 인목대비가 그 원인을 의인왕후의 귀신 탓으로 여겨 유릉에 허수아비를 묻고 의인왕후의 이름을 쓰고 활을 쏘아 의인왕후를 저주한 것을 말합다.
그러나 이는 박동량이 인목대비 집안과 원수임을 주장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는데, 박동량은 선조로부터 인목대비의 소생 영창대군 보호를 부탁받았기 때문에 당시 영창대군 일파로 몰려 처형될 위기에 있었기 때문입다.
박동량朴東亮(1569-1635)은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을 잘 보호하라는 유교 7신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광해군 당시의 실세인 대북파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축옥사 때도 모반 혐의로 심문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인목대비가 의인왕후의 유릉을 저주했다고 함으로써 많은 무당들이 잡혀가 고초를 겪게 되었습니다.
인조반정 후 인목대비를 모함했다는 죄목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인목대비측은 날조라 주장했습니다.
예컨대 『계축일기癸丑日記』 권 1에서는 결정적 증인인 고성부터가 광해군의 장인 유자신의 사주를 받아 자백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고성이 끝내 처형되고 만 것을 보면 인목대비 측의 주장이 그대로 사실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많은 무당들이 고문에도 저주 사실을 부인했던 점을 미루어 미심쩍은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다.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에 따르면 광해군光海君 5년(1613년) 6월 16일 궁궐 내의 저주사건으로 해서 수련개水連介의 원정元情을 받았습니다.
수련개가 공초供招하기를 “저는 박본궁朴本宮(의인왕후 박씨의 친정)의 무비巫婢로 의인왕후懿仁王后의 3년상을 입었습니다. 박동량은 그 전에 신이 유릉裕陵(의인왕후의 능)을 저주한 것으로 의심하고 체포하여 관청에 가두었으나, 그러한 사실이 없었으므로 방면되었습니다. 궁궐의 저주에 대한 일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했습니다.
국무녀國巫女 수련개水連介는 70세였는데, 다른 무녀의 소개로 임금의 장인인 김제남의 집에 드나들었습니다.
원정元情은 사정을 아뢰는 글을 말합다.
공초供招는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