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때 궁중의 저주詛呪




숙종肅宗 27년(1701년) 8월 인현왕후仁顯王后가 승하하자, 이를 장희빈張嬉嬪의 저주詛呪 탓이라 하여 장희빈을 자진케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내용이 『숙종실록肅宗實錄』과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에 있으며, 양자가 장희빈이 궁중 내 신당까지 설치하여 인현왕후를 저주했음을 사실로 기록한 점에서는 같지만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인현왕후전』에서는 9월 7일 숙종肅宗이 꿈을 통해 장희빈의 저주를 알아차리고, 장희빈의 처소로 찾아가 저주를 위해 마련한 신당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장희빈의 측근을 심문하여 저주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을 처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숙종실록』에서는 9월 23일 처음 장희빈의 저주에 대한 언급이 보이고, 27일부터 관련자들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어 10월 3일 장희빈의 저주했다는 쪽으로 사건을 종결합니다.
이처럼 관련 자료 사이에 다른 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장희빈의 측근들은 궁중 내 신당 설치는 장희빈 소생의 세자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라 하면서 인현왕후를 저주했음을 부인한 점 등으로 미루어, 이 사건은 조작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숙종肅宗 27년(1701년) 9월 25일 비망기備忘記를 내리시기를 “내사內司에 갇혀 있는 죄인 축생丑生, 설향雪香, 시영時英, 숙영淑英, 철생鐵生 등 모두를 의금부義禁府로 하여금 도사都事를 보내 잡아오도록 하라. 내일 인정문仁政門 밖에서 내가 친히 국문鞠問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축생 등은 모두 궁녀입니다.

비망기備忘記는 왕의 명령을 적어 승지에게 전하는 문서입니다.
내사內司(혹은 내수사)는 궁중에서 사용하는 쌀, 베, 잡물, 노비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는 관청입니다.
의금부義禁府는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추국推鞫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官衙입니다.
도사都事는 종5품 벼슬입니다.
인정문仁政門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문의 문을 말합니다.
국문鞠問은 죄인을 심문하는 일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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