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지내는 성황제




『문헌비고文獻備考』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문헌비고』는 우리나라 상고로부터 대한제국 말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문물제도를 망라한 종합 자료집으로 1770년(영조 46년) 홍봉한洪鳳漢이 왕명을 받들어 처음 편찬하고, 이를 1782년(정조 6년) 이만운李萬運이 보완했으며, 1903년(고종 7년) 찬집청撰集廳이 다시 증보해 총 16고 250권으로 간행된 책입니다.

본조本朝의 성황단城隍壇은 풍風, 운雲, 뇌雷, 우雨의 신과 단壇을 같이하고, (이곳에서) 성황신을 제사했다. 성황신城隍神의 자리는 풍, 운, 뇌, 우의 신의 오른쪽에 있으며, 모두 남향하게 한다. 의례의 규정[사의祀儀]은 풍운뇌우단에 대한 규정을 참고할 것이며, 여제厲祭 때에는 먼저 발고제發告祭를 성황단에서 거행한다. 또 여제를 지내는 날에는 성황위판城隍位版을 모시고 가서 여단厲壇에서 제사를 지낸다.

조선왕조는 명明나라의 제도에 따라 서울의 남쪽에 남단南壇을 두고, 이곳에서 성황城隍, 산천山川, 풍운뇌우風雲雷雨의 신을 함께 모셨습니다.
남단의 중앙에 풍운뇌우를 모시고, 서쪽에 성황, 동쪽에 산천山川의 신위神位(신주神主를 모셔두는 자리)를 두었습니다.
여제厲祭란 천재지변, 전쟁, 도적, 기근 등으로 말미암아 비정상적으로 죽었으며, 또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 즉 여귀厲鬼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합니다.
여제는 명 태조 때 처음 제도화되었으며, 조선왕조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정기적으로는 연 3회, 즉 청명일淸明日(한식寒食이며 식목일植木日이기도 함), 7월 15일, 10월 1일에 제사를 거행하고, 전염병傳染病 등의 재앙이 있을 때는 수시로 거행했습니다.
발고제發告祭는 성황신城隍神에게 여제厲祭의 거행을 알리는 의례이며, 성황신이 사후세계의 관리자이며 심판자란 관념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단厲壇은 여제를 거행하는 제단으로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1번지에 있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