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때의 여러 산천과 성황신의 봉호封號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태조太祖 원년(1392년) 8월 11일 예조전서禮曹典書 조박趙璞 등이 글을 올려 말하기를 ‘... 여러 신묘神廟와 여러 주군州郡의 성황城隍은 국가에서 제사하는 곳이니, 다만 모주某州, 모군某郡 성황의 신이라 일컫고, 위판位版을 설치하여 각기 그 고을 수령首領에게 매양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소서’라고 했다.”
예조전서禮曹典書는 6조曹의 장관으로 태종 5년(1405년) 판서判書로 고쳤습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조박趙璞(1356-1408)은 태종太宗 이방원과 동서지간으로 조선왕조 건국과 태종의 즉위卽位에 많은 공功을 세웠습니다.
종전從前에는 성황신城隍神을 ‘-대왕大王’으로 칭하거나 각종 작호爵號를 붙여 칭했으며, 또 성황사城隍寺에는 신상을 모셔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중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명明나라에서는 1369년(홍무 3년) 성황신의 미호美號나 봉호封號를 폐지하고, 신상을 철거하고 대신 신주神主를 모시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조박趙璞의 건의建議는 명明나라 제도에 따라 성황제도의 개혁을 주장한 것입니다.
태종太宗 6년(1406년) 정월 7일 백악白嶽의 성황신城隍神에게 녹祿(관리의 봉급俸給)을 주었습니다.
이전에는 송악松嶽의 성황신에게 녹을 주었는데, 한양으로 도읍을 정했기 때문에 옮겨서 준 것입니다.
『태조실록太祖實錄』에 따르면 태종太宗 13년(1413년) 6월 8일 사전祀典을 개정해 예조禮曹에서 아뢰었습니다.
“삼가 『문헌통고文獻通考』를 살펴보건대 산천에 작爵(벼슬)을 봉한 것은 무후武后로부터 시작했고, 송宋나라 진종眞宗 때에 이르러 5악五岳을 모두 봉하여 제帝(임금)로 삼았으며, 또 각각에 대해 후后(왕후)을 봉했습니다. 진무陳武가 말하기를 ‘제帝는 단지 하나 상제上帝가 있을 뿐인데, 어찌 산을 제帝라 부를 수 있겠는가. 또 후전后殿을 그 뒤에다 세운다 하나, 어느 산이 그 배필이 되는지 모르겠다’ 하였습니다. 『홍무예제洪武禮制』에서는 악岳, 진鎭, 해海, 독瀆을 제사하는데, 모두 모악某岳, 모해某海의 신이라 했을 뿐 봉작의 이름을 가진 것은 없었습니다. 전조前朝(고려왕조)는 경내의 산천에 대하여 각각 봉작封爵을 가하고, 혹은 처첩, 자녀, 생질의 상像을 설치하여 모두 함께 제사했으니 진실로 불편했습니다. 우리 태조太祖께서 즉위하신 초에 우리 예조에서 건의하기를 ‘각 지방 성황신의 작호를 없애고, 단지 모주某州 성황지신城隍之神이라 부르게 하소서’ 하여, 즉시 허락을 받아 이미 확실한 법령法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관청官廳에서 지금까지 구습舊習을 따르고 이를 실행하지 않아 작호爵號와 신상의 설치가 아직도 그전 대로여서 음사淫祀를 행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태조太祖께서 이미 내린 교지를 거듭 밝혀, 단지 ‘모주某州의 성황지신城隍之神’으로 일컫게 하고, 신주 1위位만 남겨 두되 그 처첩妻妾(아내와 첩) 등의 신은 모두 다 없애버리게 하소서. 산천, 해도海島의 신 역시 주신主神 1위만 남겨두고, 모두 목주木主(위패位牌 혹은 신주神主)에 쓰기를 ‘모해某海, 모산천지신某山川之神’이라 하고, 그 신상은 모두 다 철거하여 사전祀典을 바르게 하시옵소서.”
임금께서 그대로 따랐습니다.
『문헌통고文獻通考』는 중국 송宋나라 말 원元나라 초의 인물인 마단림馬端臨(1254-?)이 1317년에 완성한 일종의 백과전서로 전 348권이며, 고대에서 남송南宋시대까지의 여러 제도를 24부분으로 나누어 서술했습니다.
무후武后는 당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624-705)이며, 무후가 수공 4년(688년) 낙수신洛水神을 현성후顯聖侯로, 숭산신嵩山神을 신악천중왕神嶽天中王으로 봉한 것이 중국에서 신기神祈에게 제후諸侯로 봉하고 관작官爵을 주는 봉작封爵을 수여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5악五岳은 국토의 동, 서, 남, 북, 중앙에 있는 큰 산으로 천자나 왕이 순수하던 곳입니다.
순수巡狩란 왕이 나라 안을 두루 보살피며 돌아다니는 것을 말합니다.
진종眞宗(998-1022년 재위)은 송宋나라 제3대 황제로 대중상부大中祥符 5년(1012년) 5악과 그 부인을 각각 봉했습니다.
진무陳武는 송대宋代의 학자로 『춘추春秋』에 정통했으며, 『강동지리론江東地理論』 등의 저술이 있습니다.
『홍무예제洪武禮制』는 명明나라 초 홍무년간洪武年間(1368-98년)의 예제禮制를 규정한 책으로 저자와 출판물을 발행해 반포한 연도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嶽과 진鎭은 산, 해海는 바다, 독瀆은 강의 의미합니다.
강을 독이라 하는 것은 흘러가면서 더러운 것을 씻어내기 때문입니다.
음사淫祀는 부정한 귀신鬼神에게 지내는 제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