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의 산천단묘山川壇廟의 제도




『태조실록太祖實錄』에 따르면 세종世宗 6년(1424년) 2월 11일 임금께서 상정제조詳定提調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 이직李稷 등에게 명했습니다.
“여러 곳의 성황과 산신을 흔히 태왕太王(태상왕), 태후太后(황태후), 태자太子, 태손太孫, 비妃(왕비)라고 칭하는 것은 무리가 심하며, 이것들은 진실로 요망한 신이다. 옛날에는 단壇을 산 밑에 설치하고 제사하였는데, 이제 감악紺嶽 등과 같은 산에는 사당을 산 위에 세워서 그 산을 밟으며 그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난잡하고 불경스럽다. 또 옛날 예제禮制에는 오직 국왕만이 영토 안에 있는 산천에 제사할 수 있도록 했으나, 지금은 서민도 모두 제사하고 있으니, 구분이 엄하지 못하다. 나의 생각으로는 단壇을 산 밑에 설치하고 신판神板(위패나 신주)을 두되, 다만 ‘어느 산의 신[모산지신某山之神]’이라고만 쓰고, 오직 국가에서만 제사하고, 민간의 음사淫祀는 금지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하려 한다. 그러니 경들은 모두 산천에 봉작과 사당을 세우는 데 대한 옛날 법제를 상고하여 아뢰어라.”

이에 이직李稷이 대제학大提學 변계량卞季良, 이조판서 허조許稠, 예조판서 신상申商 등과 함께 고전을 살펴보고 아뢰었습니다.
대제학은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禮文館의 으뜸 벼슬로 정이품이며, 1401년(태종 1년)에 대학사大學士를 고친 것입니다.
변계량卞季良(1369-1430)은 문장에 능해 집현전集賢殿이 설치되면서부터 거의 20년 동안 대제학을 역임했습니다.
허조許稠(1369-1439)는 문신으로 조선 초기 예악제도 정비에 공이 많았고, 1422년에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임명되었습니다.
신상申商(1372-1435)은 1424년에 이어 1426년에도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임명되었습니다.

산신에게 작爵을 봉하는 것은 당唐, 송宋, 때에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산신에 작을 봉하고 산 위에 사당을 세워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 두루 제사한 것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또 귀신에게 배필이 있는지 없는지도 억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臣들은 예전처럼 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조許稠와 신상申商은 음사淫祀를 없애려고 했지만, 이직李稷과 변계량卞季良의 말을 듣고서 마침내 의견을 조율하여 아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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