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근당付根堂




우리나라 풍속風俗에 무릇 사람이 노래와 춤을 하면서 흥을 북돋우면 ‘신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무당에서 비유를 취한 것입니다.
여자가 장차 무당이 되려면 먼저 수십일 병을 않는데,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고 펄쩍펄쩍 뛰면서 춤을 춘 뒤에야 마음이 시원하게 되며, 이것으로 무신巫神이 있어 그렇게 시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 집을 다니면서 쌀을 얻어다가 떡과 과자를 갖추고 무당에게 스승이 되어줄 것을 청하는데, 이를 불러 신어미라 하고 큰 굿을 행하는데 이를 몸굿이라 합니다.
이 여자가 한바탕 펄쩍펄쩍 뛰면서 춤을 추면 무신이 접하고 병은 씻은 듯이 나으며, 이때부터 신어미로부터 무업巫業을 배웁니다.
서울에서는 무당을 만신萬神이라 하며, 대개 빌지 않는 신이 없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서울 무당이 받드는 신에는 부군신府君神, 군왕신君王神, 대감신大監神, 전내신殿內神이 있으며, 또 남산 국사당國師堂, 인왕산仁王山, 칠성당七星堂 등이 있습니다.
그 밖에 가택신家宅神과 천연두 신이 있는데,모두가 무당이 신사神祀를 하는 곳입니다.

쌀을 얻는 것을 걸립乞粒이라 하며, 걸립에는 쌀걸립뿐만 아니라 쇠걸립도 있습니다.
몸굿을 내림굿이라고도 합니다.

부군付君 혹은 부근신付根神을 모신 신당을 부근당付根堂이라 합니다.
부군신付君神의 성격이 확실하지 않으므로 광명신光明神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고, 부군당에 목제 남근男根을 봉안奉安하는 풍습을 근거로 생산과 관련된 성기신앙性器信仰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따르면 “중종中宗 12년(1517년) 8월 13일 우리나라 풍속에 각 관청 안에 모두 신을 모시고 제사를 하니 이를 일컬어 부근付根이라 했다. 행해온 지 이미 오래되어 혁파革罷하려는 자가 없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사헌부가 먼저 지전紙錢을 태워버리고, 각 관청에 관關을 보내어 모두 불살라버리고 그 제사를 금지하도록 하니 많은 사람들이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지전紙錢은 진짜 화폐가 아니라 돈처럼 종이를 잘라놓은 것을 말합니다.
관關이란 상급관청에서 하급관청으로 내리는 공문서公文書를 말합니다.
이능화李能和는 『조선무속고』에서 남자의 성기처럼 생긴 나무 막대기는 송씨宋氏 아가씨를 위해 만든 것이며, 부근付根이라는 명칭은 나무 막대기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송씨宋氏 아가씨와 시집을 가지 못하고 죽은 처녀를 일컫는 손각씨孫閣氏를 이능화가 동일시한 까닭은 손孫과 송宋의 음音이 비슷해 서로 통하기 때문인 것으로 꼽았습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풍속에 서울 소재의 관청에는 으레 작은 집을 지어 두고, 지전紙錢을 빽빽하게 걸어놓는데, 이를 불러 부군府君이라 한다. 서로 모여 난잡하게 제사했으며, 새로 부임한 관원은 반드시 정중하게 이를 제사했고, 비록 법을 집행하는 관청官廳이라 해도 역시 이처럼 했다. 어효첨魚孝瞻이 집의執義가 되자 하인들은 관례라 하면서 이를 고하였다. 어효첨이 ‘부군이 대체 어떤 물건이냐’ 하면서 지전을 거두어 태워버리도록 했고, 그가 전후로 거쳐 간 관부官府에서는 부군을 모신 사당을 거의 모두 불태워버렸다.

관청官廳은 사헌부, 형조, 한성부를 가리킵니다.
사헌부司憲府는 정사政事를 논하고 풍속을 바로 잡으며 관리의 비행을 조사하여 그 책임을 규탄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를 말합니다.
형조刑曹는 6조六曹 가운데 법률, 소송, 형옥刑獄, 노예 따위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를 말합니다.
한성부漢城府는 서울의 행정, 사법을 맡아보던 관아입니다.
어효첨魚孝瞻(1405-75)이 사헌부 집의가 된 것은 1449년(세종 31년)이었습니다.
집의執義란 사헌부의 종삼품 관직입니다.

부군당府君堂마다 제사하는 신이 각기 달랐습니다.
형조刑曹의 부군은 송씨부인宋氏夫人이고, 옥수獄囚를 관장하는 관청 전옥서典獄署의 부군은 동명왕東明王이며, 기타 제갈무후諸葛武候, 문천상文天祥 등의 신도 있습니다.
송씨부인이 어떤 신인지 미상未詳이나, 포도청捕盜廳과 사역원의 부군신도 송씨부인이었다고 합니다.
사역원司譯院(번역, 통역 및 외국어 교육기관)에는 조선말까지 부군당이 있었고, 여기에는 나무로 만든 남자 성기가 공양되어 있었습니다.
제갈무후諸葛武候란 중국의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정치가이며, 촉나라를 위해 동서분주하다 과로로 숨진 제갈량諸葛亮, 즉 제갈공명諸葛孔明(181-234)을 말합니다.
제갈무후란 그가 223년 무향후武鄕侯로 봉해진 데서 유래합니다.
제갈량은 형조刑曹의 부군신付君神이었습니다.
문천상文天祥(1236-83)은 중국 남송南宋의 충신忠臣으로 몽고군과의 강화를 거부하고 끝까지 저항하다 포로가 되었으며, 몽고의 회유懷柔에도 지조志操를 지키다 죽었습니다.
문천상은 병조兵曹의 부군신이었습니다.

고려 공민왕恭愍王을 받드는 곳 또한 많았습니다.
고려 말의 유민들로서 각 관청의 직원이 된 사람이 많아, 항상 옛 나라의 왕을 생각하여 사당을 지어 제사했습니다.
이능화李能和는 『조선무속고』에서 부군신府君神이란 명칭이 지명地名에서 유래由來하고 관명官名의 잘못으로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각 군郡에도 또한 부군당이 있었고, 그 신은 대개 수령首領으로 임지任地에서 죽은 이가 많았으며, 그리고 지방 수령을 또한 부군이라 칭했기 때문입니다.
부군이란 한漢나라 때 지방관地方官 태수太守의 칭호稱號였습니다.

이수광李晬光(1563-1628)은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말했습니다.
오늘날 풍속에 관아에는 으레 비는 곳을 두었는데, 칭稱하여 부군府君이라 한다. 새로 부임하는 관원은 반드시 이를 제사했는데, 복을 빌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이것은 대개 무격巫覡의 도리에 어긋난 짓거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옛날 어효첨魚孝瞻은 거쳐 가는 관부마다 그곳의 부군의 사당을 모두 불태워 없애버렸다. 그래도 후에 벼슬은 1품까지 이르렀고, 아들 세겸世謙 또한 정승政丞의 지위地位에 올랐으니, 빈다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

어세겸魚世謙(1430-1500)은 연산군燕山君 때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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