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산신사木覓山神祀[남산의 국사당]



목멱산木覓山은 서울 남산南山의 다른 명칭이며, 남산을 인경산引慶山이라고도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따르면 태조太祖 4년(1395년) 12월 29일에 이조吏曹에 명해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경대부卿大夫 및 선비와 서민들은 제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목멱신사木覓神祀는 목멱산木覓山 꼭대기에 있었고, 해마다 봄과 가을로 초제醮祭를 행했습니다.

이조吏曹는 육조六曹의 하나로 문관文官의 선임과 공훈功勳, 봉작封爵, 관인官人의 성적成績, 고사考査, 포폄褒貶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정이품 아문衙門입니다.
초제醮祭는 도교의 제사로 별을 향해 지냅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따르면 서울의 목멱산 잠두봉蠶頭峰의 국사당國師堂 음사淫祀는 다음과 같습니다.
목멱산신木覓山神을 제사할 때 전사청典祀廳에서는 이를 국사당國師堂이라 사칭詐稱하고, 고려 공민왕恭愍王, 본조本朝의 승려 무학無學, 고려 승려 나옹懶翁, 서역西域 승려 지공指空의 상像 및 기타의 여러 신상을 걸어놓았습니다.
조선 정조正祖 때 편찬된 『한경식략漢京識略』 사묘조에 따르면 춘추春秋로 목멱신사를 치제할 때는 무학無學의 화상畵像을 지각池閣에 옮겨놓는다고 했습니다.
또 맹인의 상과 여자아이의 상도 있는데, 여자아이를 천연두의 신이라 하면서 신 앞에 화장품 종류를 놓아두었으며, 대단히 추악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자못 성행盛行하여 나라에서도 금하지 못했습니다.
전사청典祀廳은 1472년(성종成宗 3년) 각종 국가제사의 제물 주관 등을 위해 설치한 관청입니다.
나옹懶翁은 고려 제31대 공민왕恭愍王 때의 왕사王師였습니다.
지공指空은 인도 출신의 승려僧侶로 1326년(충숙왕忠肅王 13년) 고려에 와서 대단한 각광을 받았고 나옹화상懶翁和尙 혜근惠勤에게 법法을 전했습니다.

목멱신사, 일명 국사당은 현재 정상 팔각정이 있는 곳에 한강을 향해 서남향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창건創建에 대해서는 조선 태조太祖가 잠저 시에 왕위王位에 오를 것을 예언했던 함경도 영흥의 노파 모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전합니다.
잠저潛邸란 왕세자王世子와 같이 정상법통이 아닌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 또는 그 살던 기간을 말합니다.
목멱신사는 1925년 일제가 그 아래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이건移建을 강요해 지금의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산1번지로 옮겼으며, 서울의 대표적인 굿당인 국사당國師堂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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