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산 정녀부인묘
『천예록天倪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예록』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의 귀신담이나 기괴한 사연을 모아놓은 야담집野談集입니다.
시인詩人 석주石洲 권필權鞸(1569-1612)이 어렸을 때, 일찍이 백악산에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백악산白岳山은 서울 경복궁의 뒷산으로 북악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산꼭대기에 한 신당이 있었는데, 곧 세상에서 말하는 정녀부인貞女夫人의 사당이었습니다.
그 안에 영정影幀을 모셔놓았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길을 이었습니다.
석주石洲가 분개하면서 말하기를 ‘저것이 어떤 계집이기에 이리도 괴이하고 황당무계荒唐無稽한가. 하늘과 땅의 귀신들이 밝게 두루 늘어서 있거늘, 어찌 네까짓 여자 귀신이 제멋대로 하면서, 맑고 밝은 세상에 위엄을 부리며 복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하고는 그 영정을 찢어버렸습니다.
석주는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한 부인이 흰 저고리 푸른 치마를 입고 노기를 머금고 나타나 말하기를 “이 몸은 천제天帝의 딸인데, 천제를 모시는 국사國士에게 시집을 와서 정녀부인貞女夫人이라는 칭호稱號를 받았다. 고려의 운이 이미 가고, 하늘이 이씨李氏(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太祖가 이씨李氏라는 것을 말한다)를 도와 한양漢陽으로 도읍都邑을 옮기도록 하면서, 천제께서는 국사國師에게 명하여 목멱산에 내려가 동쪽 땅을 지키도록 했다. 때문에 이 몸이 국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게 되니, 천제께서 그 마음을 불쌍히 여겨 백악으로 내려가는 것을 허락하셔서, 목멱산과 마주볼 수 있도록 했다. 이 몸이 이 땅에 산 지 3백 년이나 되었는데, 결국에는 네까짓 어린놈에게 능멸을 당하였으니, 내 장차 천제께 하소연할 것이며, 수십 년 뒤에 마땅히 돌아와서 너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 뒤 석주는 시詩로 인해 화를 입었습니다.
광해군光海君의 처남 유희분 등 유씨 일당이 세력을 휘두르는 것을 풍자한 「궁류시」를 지었다가 광해군의 분노를 사서 해남으로 귀양을 가던 중 동대문 밖에서 행인行人들의 동정으로 주는 술을 폭음하고 이튿날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석주는 체포된 뒤 고문을 당했으며, 결국 전라도 해남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녁에 성동城東의 여관에서 유숙하는데, 한 부인이 머리맡에 서 있었으니 곧 전날 꿈에 나타난 그 사람이었습니다.
부인은 석주의 귀에 대고 말하기를 ‘그대는 나를 모르겠느냐? 내가 바로 정녀부인이다. 내가 오늘 한번 보복報復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날 석주는 죽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