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과 구복
무속을 중심으로 한 민속의 전통에서는 생사화복이 모두 귀신의 소치라고 인식한 반면 유교의 전통에서는 화복이 인간행위와 의지에서 근원하는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서경書經』에는 “(하늘은) 인간이 선善하면 온갖 복을 내리고 불선不善하면 온갖 재앙災殃을 내린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는 화복禍福에 대한 유교의 입장이었습니다.
하늘이 화복의 주체로 전제되어 있지만, 인간행위의 선악善惡이 낳은 결과를 반영하는 주체로 제한되고 있습니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 따르면 성종 8년 주계부정 심원深源이 다음과 같이 상소했습니다.
“무릇 인간의 화복은 자취自取하는 것이지, 선한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귀신에게 아첨과 기도를 한다고 해서 복을 얻은 자는 아직 있지 않았으며, 악한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정도를 지킨다고 해서 화를 얻는 자도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화복의 근원을 인간의 자취自取로 인식한 유교는 인간의 자율적 행위와 의지에 대해 체계적인 사색을 주도한 엘리트의 전통에 의해 강화된 반면 화복의 근원을 귀신으로 돌리는 민속종교는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인간외적인 힘에 의존하는 대중의 숙명론적 전통에 의해 강화되었습니다.
민속종교의 전통에서는 화복의 근원이 되는 귀신을 의례적으로 달래고 위로할 줄 아는 무巫의 의례에 좌우된다고 인식했습니다.
즉 생사화복生死禍福이 무巫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고가 그것입니다.
귀신에게서 비롯된 화복은 귀신과 무巫를 매개하는 무속의례를 통해 구복求福의 효과를 드러냈습니다.
유교는 이런 민속의 전통을 음사로 규정하고 오로지 인간 자신의 도덕적인 자각과 행동 그리고 그에 대한 하늘의 응답을 강조했습니다.
『중종실록中宗實錄』에 따르면 중종 때 홍문관弘文館 부제학 유세린柳世麟의 상소에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음사淫祀를 없애는 것입니다. 수복壽福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부처에게 구한다고 해서 얻을 수 없습니다. 재앙은 나에게 달려 있으니 무巫를 섬긴다고 하여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세린은 화복은 기도와 기영의례祈穰儀禮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취自取의 실현實現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유교의 입장에서 자취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실천은 수덕修德에 있었습니다.
자취가 화복의 근원에 대한 설명이라면 수덕은 재앙의 극복논리였습니다.
화복에 대한 상반된 이해와 대처가 한국 종교문화에 양면적으로 존재하는 도덕적 경건주의pietism와 의례지상주의ritualism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유교는 자연현상과 윤리의식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전통을 좇아 자연현상의 이상적인 징후를 왕을 비롯한 유교 엘리트의 결여된 윤리의식의 반영으로 간주했으므로 조선조 유학자들은 재앙에 즈음하여 빈번한 시무상소를 올리면서 단박에 재앙을 해소할 수 있는 묘책보다는 통치자의 실덕失德에 대한 경고와 복덕復德의 권장을 강조했습니다.
사회전체를 위협하는 자연현상 속에 나타나는 천변재이天變災異에 직면한 왕은, 먼저 덕을 닦고(수덕修德), 그런 뒤 정사를 다듬고(수정修政), 그 다음으로 구제책을 강구하는(수구修救) 가치체계를 실현했습니다.
수덕-수정-수구로 이어지는 실천원리는 수기修己-치인治人의 기본이념을 종교의례에 적용한 것입니다.
유교의례는 근본에 보답하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보본반시報本反始의 표현에서 드러나듯 신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인간의 성실한 의무이행을 목표로 하는 경건주의 태도를 내포해야만 했습니다.
유교의 의례경건주의는 대가를 기대하기보다는 “밖으로는 제물을 다하고, 안으로는 성의를 다하는 것을 의례에 임하는 마음의 자세”로 수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민속의례의 전통에서는 구복求福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초월적 영혼이나 신을 위무慰撫하기도 했으나 때에 따라서는 이들을 위협하고 압박하는 강요의례coercive ritual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조상의 영혼을 효孝의 핵심적인 대상으로 여겼던 유자의 입장에서 조상신을 압박하고 조정하는 무속의례의 세태는 음사 중의 음사였던 것입니다.
『중종실록中宗實錄』에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성인의 법을 제쳐두고 야만스런 풍속의 그릇됨을 빌어, 법복法服을 차리고 호위護衛를 삼엄하게 하며, 광대廣大가 돌아다니고 무격巫覡이 희롱戱弄하면서 기은祈恩이라 하니 이는 어떤 제사입니까? 힘차게 북을 치면서 하늘에 있는 선조의 영혼을 잡아다가 제멋대로 희롱하니 실로 효성스런 아들과 인자한 손자가 차마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조상뿐만 아니라 무巫가 용신龍神을 자극하고 고무시키며 거행한 고무토용鼓舞土龍의 기우의례祈雨儀禮나 신에게 강우降雨를 강요하며 무巫를 햇볕에 폭로시켰던 폭무의례暴巫儀禮는 신을 기만하고 강요하는 신성모독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토룡에 채찍을 가하는 편룡기우鞭龍祈雨, 용신을 상징하는 도마뱀에 주문과 소음을 동원하여 압박했던 석척기우蜥蜴祈雨, 화룡을 투기하거나 방치하는 화룡기우畵龍祈雨는 유교의 경건주의 태도에 의해 비윤리적非倫理的인 종교문화로 인식되었습니다.
급기야 조선후기에 이르면 용신을 압박하고 자극하는 기우제룡祈雨祭龍의 강요의례가 국행의례에서 배제되고 소거되기에 이르지만, 대중의 전통에서는 흥분과 열정 속에서 용신을 자극하고 압박하는 용부림이 계속되었으며, 무巫는 그런 용부림을 주도하는 용부림꾼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유교 엘리트의 의례경건주의와 대중의 감성적 의례지상주의는 유교와 민속종교의 의례적인 태도와 문화적 지향의 갈림길이었고, 나아가 한국 종교문화의 성격을 좌우하는 두 양면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