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의 제신에 대한 신앙



도교道敎의 교단敎團이 형성되지 않은 만큼 도교의 제신諸神이 오히려 무속 등의 민간신앙에 수용되었습니다.
도교의 제신이 한반도에 전승된 것은 고구려 말 중국의 오두미도五斗米道의 전승으로 소급할 수 있습니다.
그때 도교의 최고신인 원시천존元始天尊에 대한 신앙도 함께 전래되었습니다.
원시천존은 천지가 생겨나기 이전에 자연의 기운을 받고 태어났으며 영원불멸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원시천존의 신앙은 일반화되지 못했으며, 당시 도교의식에 따라 산천에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중국 도교에서 형성된 산신山神, 수신水神에 대한 신앙이 함께 전래되었습니다.

도교의 제신에 대한 신앙이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고려시대로 왕실에서 도교식 제사를 올리면서부터였습니다.
이때 테일太一, 칠성七星, 노인성老人星 등 다양한 신격神格이 소개되었습니다.
조선조에 접어들어서도 소격서昭格署에서 도교식 제초의식齌醮儀式을 다수 거행했으며, 이때 찾아볼 수 있는 신격은 옥황상제玉皇上帝, 태상노군太上老君, 보화천존普化天尊, 칠성七星, 북극성北極星 등입니다.
옥황상제는 도가에서 하느님을 이르는 말입니다.
태상노군은 도가에서 노자老子를 하느님과 동일시한 것입니다.
보화천존은 도가에서 우레인 뇌성雷聲을 하느님과 동일시한 것입니다.
중기 이후 소격서昭格署가 혁파되면서 이들의 신격이 무속 등 민간신앙에 흡수된 것으로 보입니다.
소격서는 조선시대에 하늘과 땅, 별에 지내는 도교의 초제醮祭를 맡아보던 관아로 세조 12년(1466년) 소격전을 고친 것이며, 임진왜란 이후 완전히 폐지되었고, 그 제단은 서울 삼청동에 있었습니다.
도교가 무교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따로 도교가 형성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옥황상제란 호칭은 중국 도교에서 주로 송대宋代 이후 널리 유포流布된 명칭으로 중국 고대의 제帝, 혹은 상제上帝에서 유래했습니다.
옥황상제란 엄밀히 말해 도교의 최고신이라고 말할 수 없으나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는 점에서 대중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옥황상제를 거의 최고신과 같은 위치로 숭배했습니다.

옥황상제 외에 민간신앙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도교의 신격은 성황城隍, 칠성七星, 조왕竈王 세 가지입니다.
사자死者의 혼령은 그의 판결에 따라 신에게 자신의 선행과 악행을 보고해야 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믿음이 깊은 사람들은 성황묘城隍廟에 제물을 바치면 후히 보답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성황숭배 의식이 중국 북제北齊 때로부터 시작되어 송대宋代 이후 널리 퍼진 까닭은 중국의 조정에서 그것을 장려했기 때문이며 1382년에 조정은 성황묘의 관리를 맡으면서 수호신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성황은 선사시대에 요堯 임금이 제사지냈다는 팔사八蛇 가운데 일곱 번째 신神인 수용水庸과 동일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난 날 선정을 편 지방관이 죽으면 그를 신격화하여 성황으로 삼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한국인도 성황을 모셨는데 서낭이라고도 했습니다.
한반도의 서낭은 본래의 마을 수호신 신격이 여타의 신격과 결합되어 복합적인 신앙대상으로 변화된 신격입니다.
서낭은 마을 수호신, 풍요신, 조상숭배신앙을 함께 다루는 데 있어 중요한 신앙형태입니다.
성황신앙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고려 문종文宗 때입니다.

칠성七星은 최고신을 대신해 기우祈雨의 대상신 혹은 인간의 장수와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다양하게 신앙됩니다.
최고신은 침묵하는데 북두칠성이 구체적인 명령을 실천하여 상서로움과 재앙을 담당한다는 믿음, 즉 사명신司命神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믿어져왔습니다.
도교에서 천체天體를 신앙하는 것이 많으며, 특히 북두칠성을 신앙하는 칠성신앙이 한반도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려시대 조정에서 태일太一을 지낼 때 칠성신을 제사지냈고 무속에서도 칠성신을 모셨습니다.
기우에서 칠성신을 모신 것은 고려, 조선을 통해서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궁중의례宮中儀禮는 민간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민간신앙뿐 아니라 불교신앙과도 융화되어 불교 사찰 가운데는 많은 칠성각七星閣이 남아있어 신앙적 기능을 합니다.
칠성은 명命을 길게 이어준다는 장수신長壽神으로 신앙되어 무속에서도 굿할 때 칠성굿이 굿석席으로 들어가고 한반도 어디서나 민간民間에서 기자祈子와 육아育兒를 위한 치성致誠에도 칠성신에게 제를 올립니다.

조왕竈王은 부엌을 관장하는 가신家神입니다.
화신火神으로서 조왕각시, 조왕대신, 부뚜막신이라고도 합니다.
부인네들이 부엌을 늘 청결하게 유지하고 아궁이에서 불을 다룰 때 부정한 말을 하지 않으며 부뚜막에 걸터앉거나 다리를 올려놓지 않는 등의 풍습은 조왕신앙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한국인은 불씨를 신성하게 여겨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각별히 치성을 드렸으며 부뚜막 벽에 대臺를 만들어 그 위에 물을 담은 조왕보시기를 두어 조왕신을 모시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조왕신앙은 불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되었습니다.
불교에서 조왕은 호법선신護法善神 중 하나로 인사人事를 관할하여 사람이 지은 업業의 선악을 가려 화복禍福을 주는 신으로 사찰의 조왕단에 모셔졌습니다.

성황城隍, 칠성七星, 조왕竈王 세 가지 신神의 신앙이 한반도 어디를 가나 흔히 발견되어 도교가 한국인의 정신적 기층基層 속에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황당(서낭당)은 어디를 가나 마을 입구 혹은 고개 마루 길옆에 자리 잡고 있는 보편적인 신당신앙神堂信仰이며, 칠성七星 역시 민간에서 누구나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신앙하는 신이고, 조왕 또한 어디를 가나 민가의 부엌 부뚜막 뒤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주부들의 소망을 성취시켜주는 신이라고 믿어, 주부들이 매일 아침 정화수井華水(첫새벽에 길은 맑고 정한 우물물)를 바치며 소망을 빌었습니다.

도교적 신앙의 특징은 일신一神과 다신多神이 복합된 가운데 최고신보다는 많은 신들이 신앙된 점입니다.
오히려 최고신은 논리적 전제로 요청된 느낌이 강합니다.
다만 옥황상제의 신앙이 널리 유포된 것은 전통적 경천敬天 신앙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인간 가운데 뛰어난 인물들이 죽어서 신으로 받들어지는 과정 또한 도교적 신론의 체계와 유사합니다.
도교적 신론에서는 수련과정을 거쳐 도달한 신선과 높은 위계의 신들 사이의 간격이 모호하며 서로 동일시하는 경향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관운장과 같이 역사적으로 뛰어난 인물이 도교적 신에 포함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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