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과 신주



사당祠堂은 신주神主가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3년 동안 상청喪廳에서 아침, 저녁 상식上食을 받지만, 대상(3년상)이 지나면 상청을 없애고 신주를 사당으로 모시게 됩니다.
신주는 4대 동안 모시게 되며, 5대째가 되면 혼잭魂帛을 무덤 앞에 묻는 매혼埋魂한다 하여 묘소 옆에 묻습니다.
따라서 사당은 조상신의 봉안처이며, 자손들은 가정의 사소한 일이라도 반드시 사당에 고했으며, 출입 때에도 사당에 고했습니다.
전통사회에서는 관례와 혼례 때 사당에 고했고, 자손이 과거에 급제하면 사당에서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고사를 지냈습니다.

사당은 가묘家廟라고도 하며, 왕실의 것은 종묘宗廟라고 합니다.
한반도의 사당제도는 삼국시대부터 왕실에서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남아있는 개인의 사당은 주자가례를 시행한 조선시대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을 보입니다.
조선 초기부터 사대부는 가묘를 세우고 선대를 제사지내도록 하고 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실록에 적혀 있습니다.
태종 6년(1406) 대사헌大司憲 허응이 올린 시무 7조 가운데 가묘문제에 관한 내용에도 잘 나타납니다.
... 그 여섯째는, 『경제육전經濟六典』(한국 최초의 법전)의 한 조목에, ‘공경대부公卿大夫에서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가묘家廟를 세워 때때로 제사지낸다. 어기는 자는 불효不孝로 논죄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가묘를 세운 자가 백 사람에 한두 사람도 안 되고, 나라의 법령을 따르지 아니하고도 예사로이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 조금도 사람의 자식 된 뜻이 없습니다. 원하건대 중외中外에 가묘를 세워야 할 자들로 하여금 금년을 기한으로 독촉하여 세우게 하고, 만일 따르지 아니하는 자가 있거든 경중京中(서울 안)에서는 본부本府에서 외방에서는 감사監司가 자세히 살펴 논죄하게 하소서. ...

임금이 의정부에 내려 의논하여 아뢰게 하니 의정부에서 의결했습니다.
... 제6조에 가묘를 논한 일은 만약 금년으로 기한하면, 범법자犯法者가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빌건대 오는 정해년 12월로 기한할 것입니다. 그중에 3품 이하로서 집이 가난하고 터가 좁아서 가묘를 세울 수 없는 자에게는, 『육전六典』에 좇아 정결한 방 한 칸을 골라 때때로 제사지내도록 허락하소서. ...

하니 그대로 따랐습니다. 또 세종실록 9년 2월의 기록에는 다음의 것이 있습니다.

예조에서 계했습니다.
대소인원大小人員이 가묘제도는 여러 번 교지敎旨를 받아 법을 마련했으나, 근년 이래로 고찰이 없으므로 인해 서울과 지방에서 가묘를 세우지 않고 신주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자못 많이 있습니다. 청하건대 거듭 밝혀서 2품 이상은 오는 누신년으로, 6품 이상은 오는 경술년으로, 9품 이상은 오는 계축년으로 기한을 삼아 모두 가묘를 세우게 하고, 그 주묘主廟의 가사家舍는 주제主祭하는 자손에게 전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도록 할 것이며, 전과 같이 가묘를 세우지 않고 신주를 만들지 않는 사람은, 서울에서는 사헌부가, 외방外方에서는 감사가 일정한 때가 없이 고찰하여 풍속을 바로잡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습니다.

조선 초기 조정에서 강제적으로 가묘의 설립과 신주의 봉안을 권장했으며, 중기 이후에야 비로소 4대 봉사奉祀를 위한 사당제도가 정착되었습니다.
사당의 건립도 품관品官 이상만이 별도로 설치할 수 있고, 서인은 침실에 마련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반계층을 중심으로 보편화되었을 뿐 서민들은 시행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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