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


탁발(혹은 걸식乞食)의 원어는 고대 인도의 언어로 발우라는 그릇 속에 떨어져 모여진 밥이라는 의미였습니다.
탁발하는 사람은 발우에 받은 음식을 그대로 먹었습니다.
오전에 탁발하여 얻은 음식을 오후에 가지고 다닐 수 없는 계율이 있었던 것도 더운 기후조건과 관련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면서 스님들의 식생활이 변하게 됩니다.
탁발에 의해서가 아니라 절에서 자급자족自給自足의 식생활을 원칙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 선림禪林의 생활규범生活規範인 청규淸規를 처음 제정한 백장회해百丈懷海(749-814)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을 먹지 않는다一日不作一日不食’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예로부터 스님은 원래 하루 한 끼를 원칙으로 했습니다.
아침식사는 물론 저녁식사도 먹지 않았습니다.
점심식사가 정식이었고, 그 밖의 비시식非時食이라고 해서 제한했습니다.
스님들은 하루에 한 번 먹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서 정오正午를 넘기면 그 날은 먹지 않았습니다.
점심 이후인 오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았던 이유를 『석씨요람釋氏要覽』에서 「처처경處處經」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정오 이후에 먹지 않으면 다섯 가지 복을 얻는다. 첫째는 소음少淫, 둘째는 잠이 적어지고, 셋째는 일심一心을 얻으며, 넷째 방위각方位角 없고, 다섯째 몸에 안락함을 얻으며 병이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스님은 이런 복을 얻기 위해 정오 이후에는 먹지 말아야 한다.

그 뒤 한 끼를 먹던 비구들에게 죽을 한 끼 더 먹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 연유가 『마하승기율』에 나타나 있습니다.
난타難陀의 어머니는 포살날에는 식사를 만들어서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렸는데 어느 날 솥에 밥을 짓고 있을 때 끓어 넘친 밥물을 마셔보니 몸의 상태가 좋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그래서 물을 많이 넣고 쌀을 적게 넣은 뒤, 물과 쌀을 분별할 수 없을 만큼 푹 삶아 후추 등을 넣어 단지에 담아 기원정사의 부처님께 갔습니다.
“원하옵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스님들께 이 죽공양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옵소서” 하고 간청하니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도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분율四分律』은 “새벽이 되어야만 비로소 죽을 먹을 수 있고 다른 때는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새벽에도 세 종류가 있는데 『석씨요람』에서는 “바사론이 말하기를”이라는 주를 붙여 “첫째로 빛이 나무줄기를 비추어서 하늘이 아직 어둑어둑할 때이다. 둘째로 해가 나뭇잎을 비추어서 하늘이 청색이 날 때이다. 셋째로 해가 떠올라 하늘이 백색이 될 때이다. 이 세 가지 색 중에 백색을 정시로 삼는다. 모름지기 손바닥을 펴보아 손금이 분명하게 보일 때 비로소 죽을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설에서는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이 보통으로 아침 공양은 새벽 예불 두세 시간 후인 6시 전후에 먹으며, 점심 공양은 오전 9시와 11시 사이에 부처님 앞에 올리는 밥인 사시마지巳時摩旨가 끝나는 11시에서 12시 사이이고 저녁 공양은 예불하기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전인 4시 반에서 5시 반 사이에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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