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거리, 산바라기, 제석거리, 별성거리, 대거리, 호구거리
샤머니즘은 원래 아시아 대륙의 동북부, 즉 극동아시아의 우랄Ural 알타이Altai 민족 사이에서만 행해졌던 토착적인 고유 원시종교의 한 형태로 오늘날 우럽과 아시아 모두 즉 유라시아Eurasia 대륙에서, 즉 동쪽으로는 베링 해협Bering Sound으로부터 서쪽으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the Scandinavian Peninsula에 걸친 대륙을 포함해 전반 혹은 부분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샤머니즘의 가장 큰 특색은 정령숭배입니다.
정령숭배精靈崇拜란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자연물의 정령이 인간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 갖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섬기고 숭배하는 초기 단계의 신앙을 말합니다.
무당을 통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무당을 주主가 되게 만들고 정령은 무당에 의해 구사되는 자구資具와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무당을 생래적生來的 혹은 후천적後天的으로 혹은 특수한 영능靈能을 가지고 정령과 통해 인간과 정령과를 매개媒介하는 역할을 하고 정령에게 인간의 뜻을 호소해 전하며 정령의 뜻을 살펴 정령 대신 인간에게 의지(예언, 기도, 치병)를 나타내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샤먼은 한국의 무당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당내력巫堂來歷』은 조선조 말 난곡蘭谷이란 호를 가진 사람이 서울 굿의 각 거리巨理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한 책자로, 제물의 그림을 통해 제물의 종류를 알 수 있고, 무녀의 그림을 통해 무복巫服과 무구巫具를 알 수 있는 훌륭한 서울지역의 무속지巫俗誌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 무당의 내력에 대해 단군檀君에서 부루扶婁로 이어지는 단군 조선에서 무속이 시작되었으며, 농경사회農耕社會에서 곡신신앙穀神信仰이 가정에까지 보편화되면서 무속신앙이 자리 잡았다고 봅니다.
이 책은 작고 큰 두 책으로 되어 있으며, 두 책에는 각기 열세 굿거리에 관한 그림과 설명이 들어있지만 굿거리를 배열한 순서가 다릅니다.
이것이 국사당國師堂 열두 굿거리의 종류와 순서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굿거리의 순차와 굿의 규모가 내용에 따라 기본적인 열두 굿거리를 중심으로 약간 가감을 통한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 부정거리(不淨巨理/不精巨理)
굿을 시작함에 앞서 부정不淨의 생각이 있거나 무명의 잡귀가 있으면 이를 안정시켜 부정을 제거하는 굿거리를 말합니다.
무당굿의 열두 굿거리 가운데서 첫 번째 거리로 부정풀이라고도 합니다.
무당인 사제자師弟子는 굿을 하기에 앞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합니다.
사람이 죽은 집에서 부정을 없애려고 무당이나 점을 치는 소경을 시켜 악귀를 물리치는 것을 말합니다.
2. 산바라기/감응청배感應請陪
사경굿에서, 마지막 날 아침에 산 위에서 산신맞이로 하는 굿입니다.
『무당내력』에서는 상단에 제상을 그렸고, 하단에는 무녀가 춤추는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제물이 별로 없는 것이 특징이고, 하단의 무녀는 남치마에 초록 두루마기를 입고 흰 수건을 양손에 들고 두 팔을 벌리고 서서 춤추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치성할 때 무녀는 태백산을 바라보고 성령 감응을 세 번 부른다고 적혀 있습니다.
책(작은)의 첫 페이지에 녹색과 남색 두루마기와 갓을 쓴 남자들은 피리와 해금을 들고 앉아 있으며, 녹색치마에 남색저고리를 입은 여인은 제금을, 남치마에 주황저고리를 입은 여인은 장고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 악사는 청배시請陪時와 오신시娛神時에도 무악을 연주합니다.
감응거리(가망거리, 감응청배, 감응정배)는 원래 태백산 산신인 단군을 모시는 굿거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제석거리帝釋巨理
제석거리는 단군인 삼신을 모시는 굿거리로서 자녀의 출산을 관장하는 신이 바로 제석帝釋이며, 단군을 삼신제석이라 일컫습니다.
제석은 불교신인 제석천帝釋天에서 명칭을 따온 것입니다.
본래 무속의 생산신生産神을 말합니다.
민속에서 항아리에 벼를 담아 모셔두었다가 햇곡이 나면 갈아 넣는 것이 있는데 이곳은 곡식의 형태로서 부루扶婁단지, 제석帝釋단지, 시준단지 등으로 불립니다.
시준단지를 영남지방에서는 세존단지라고 합니다.
제석거리에서 무녀는 흰 장삼을 입고 흰 고깔을 쓰고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한 손에는 방울을 들고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입니다.
제석거리나 안택에서 제석신의 유래를 읊는 서사무가인 제석본帝釋本풀이를 구연하는데, 부잣집 외동딸이 중과의 인연으로 삼형제를 낳고 삼신三神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4. 별성거리別星巨璃
『무당내력巫堂來歷』 상단 둥그런 소반에 제물 진설이 있고 무녀는 흑색 전립戰笠(모립毛笠이라고도 하는데 품계에 따라 장식이 다름)을 쓰고 붉은 저고리와 푸른 치마를 입고 그 위에 검은색 태자를 걸쳐 입고 오른손에는 큰 칼, 왼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습니다.
『무당내력』의 저자는 별성신別星神의 기원을 농경을 처음 백성에게 가르쳐준 단군의 시신 고시례高矢禮에 두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별성신은 ‘별상’이라고도 하는데 흔히 높은 벼슬을 했던 인물의 혼령을 모시는 거리로 알고 있거나 천연두신天然痘神을 호구별성戶口別星이라 하여 별성신은 역병疫病으로 관장하는 신으로 알고 있으나, 『무당내력』에서는 호구거리가 별도로 그려져 있어 별성신이 역병신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5. 대거리大巨璃
『무당내력』에 따르면 대거리를 최장군거리라고도 합니다.
단군을 받들어 모신 뒤에 성스러운 뜻으로 소원을 이루도록 해준다고 하며, 최근에는 최장군崔將軍이 하강下降한다고 합니다.
대거리는 옛날에 단군을 모시던 거리였지만, 최근에는 최장군을 모시는 거리고 바꾸어졌으며, 사람의 소원을 이루게 해주는 신을 모시는 굿거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녀巫女의 복색服色은 장군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단군의 모습이 아니고 崔塋 將軍의 모습을 타나낸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조 지배층으로부터 탄압을 받던 무속인들은 민속신앙으로써 민족의 영웅인 최영 장군을 무신巫神으로 받들게 되었고, 특히 고려군의 서울이었던 개성을 중심으로 최영 장군에 대한 숭앙崇仰이 두드러졌습니다.
개성 덕물산 위에 무신당巫神堂을 세우고 최영 장군의 영을 주신으로 봉안하고 장군의 제일 부인인 상산부인上山婦人과 제이 부인인 의일義一 將軍장군도 함께 신으로 모십니다.
대거리의 제물祭物에서 특이한 점은 숭상崇尙을 따로 그리고 있는 것으로 대거리의 주신이 술을 좋아하는 신이란 점입니다.
6. 호구거리戶口巨理
『무당내력』 상단에 둥근 소반에 편, 떡, 과일 등의 제물이 진설되어 있으며, 무녀는 붉은 망을 덮어쓰고 신모나 쾌자가 없는 민 노란 저고리에 홍색치마를 입고 오른손에는 부채, 왼손에는 방울을 들고 서 있는 모습으로 여성신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천연두신 혹은 마마신을 호구라고 합니다.
가정에서 홍역을 치르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치성 드릴 때 그 순두를 빌곤 합니다.
최근에 호구신이 최장군의 딸이라고도 하고 혹은 첩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망발妄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