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훔치지 않겠어요


요즘 스코틀랜드에 소재하는 캠프힐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의 치료교육에 관한 책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장애자들이 크리스마스를 장식하기 위해 줄을 지어 자신들의 촛불에 불을 붙이는 의식을 행하는 장면을 보고,
유태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빈에서 개업을 하던 의사 칼 쾨니히는 감동을 받아 자신의 남은 생애를 장애들을 위한 커다란 불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동기가 되어 1940년 그는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에 캠프힐 공동체, 혹은 마을을 형성하고 뜻을 같이 하는 지인들과 함께 장애자들을 위한 특수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교육이념과 교과과정은 이미 독일에 설립된 발도르프 학교의 것을 따르고, 또한 인지학에 바탕을 둔 루돌프 슈타이너의 교육철학을 따랐습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점은 그 학교의 사례 연구 중에서 제가 느낀 바를 전하려는 것입니다.
어릴 때 와서 함께 기숙하며 교육을 받은 장애자는 성인이 되면 학교를 떠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가능한 한 사회에 적응시키는 것이 캠프힐 학교의 목표이니까요.
성인이 되어 학교를 떠날 때가 되면 학생들은 안절부절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혼자 자신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지요.
한 사내가 졸업한 뒤 머잖은 마을에 아파트를 얻고 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는 정부에서 얻어줍니다.

지금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상점에서 창문을 닦고 돈을 세는 일을 하면서 용돈을 벌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없을 때는 부산하게 돌아다니면 안 되고 가만히 앉아서 손님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디스코텍에 가자고 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그의 아파트로 와서 마리화나를 주어 함께 핀 적도 있고, 술을 가져다주어 함께 마신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화나를 피고 어지러움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그 뒤로는 그것을 피우지 않습니다.

그가 적은 글 가운데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처음 마을로 와서 다른 상점에서 일할 때,
훔친 일로 경찰이 오고 그 상점에서 해직되었습니다.
그는 적었습니다.

"그들이 나를 해직한 것을 옳았다. 다시는 훔치지 않겠다. 경찰이 오고 소란스러워지며, 영창에 갇히는 것이 싫다. 이런 일이 정말이지 싫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말하는 것이 비장애자들인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훔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에 훔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경찰이 오고 소란스러워지며, 영창에 갇히는 것이 싫어서 훔치지 않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줄 압니다.
다만 다수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의 대화 가운데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반지를 우연히 길에서 주웠을 때,
그 반지가 있어도 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있겠느냐는 도덕적인 질문이 나옵니다.
반지를 옆으로 돌리면,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은행에 가서 돈을 들고 나와도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는데,
그 반지의 효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 적어도 한 번은 그 반지의 효력을 사용해보지 않을까요?
은행으로 가던, 보석을 파는 곳으로 가던, 아니면 붕어빵 아줌마에게로 가던 ...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그 장애자의 말처럼
경찰이 오고 소란스러워지며, 영창에 갇히는 것이 싫어서가 아닐까요?
사람들의 질타를 받는 것이 싫어서가 아닐까요?

그런데 아무도 모른다면,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면,
그래도 우리는 도덕적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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