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들의 공통점들을 수집하기 위해 
 

바이츠의 '일련의 유사논증'은 말 그대로 예술작품들의 공통성들을 지적해 이를 작품을 규정하는, 즉 예술을 정의하는 수단으로 삼자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방법은 예술작품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는 일이다.
만약 새로운 작품이 과거 작품들이 지닌 공통점들을 지녔다면 그 새 작품은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논증이다.

이 논증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예술작품들의 공통점들을 수집하기 위해 우선 모든 사람이 예술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들로 한 조를 만들고 이런 작품들을 기반으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속성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새로운 작품에 직면해서 이것이 작품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려고 할 때 과거 작품들의 속성이 이것에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새로운 작품이 간결한 이야기의 구성이란 점에서 <트리스탐 샌디 Tristam Shandy>를 닮았다거나, 연민과 두려움에 있어 <오이디푸스 왕 Oedipus Rex>과 유사하다든가, 숭고한 점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닮았다면 그 새로운 작품은 가히 예술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공통의 속성들이 얼마나 많이 닮아야 하는가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여하튼 하나나 둘만 닮았다고 하더라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바이츠의 '일련의 유사논증'이다.

하지만 이 논증의 문제는 속성들에 의존하는 것이 너무 느슨하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어떤 의미에서 그 밖의 것들과 유사하다는 건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것도 과거의 속성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어 자연히 모든 것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은하계에서 온 외계인의 캬뷰레터를 예로 들면 그것은 최소한 물질이란 점에서 로댕의 <지옥의 문 The Gate of Hell>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어떤 후보작이라도 그것은 어떤 점에 있어서 패러다임을 닮을 것이며
우리가 패러다임들의 전래물들을 고찰할 경우 그 어떤 것anything과 예술작품으로 이미 간주된 것들 사이에는 일정한 유사함이 혼용되어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이는 너무 포괄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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