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항상 어떤 이유에서 예술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서 단토와 조지 딕키의 예술론은 가장 유력하다.
두 사람이 제시한 예술의 정의는 예술가들이 내놓은 어떤 종류의 작품과도 모순이 없다.
두 사람에게 예술작품은 실재 세계의 어떤 것들과 식별되지 않을 정도로 같을 수 있다.
어떤 실재의 것들이라도 적합한 상황에서 작품으로 변용될 될 수 있다는 것이 두 사람의 주장이다.
만약 두 사람의 예술의 정의가 옳다면, 예술작품의 개념을 위한 필요충분조건들에 대한 암시가 논리적으로 예술의 실천이나 예술적 행위와 상상력의 범위를 규정할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된다.
두 사람의 예술에 대한 정의는 변화, 팽창, 진기함에 대한 예술 실천의 추정되는 열린 개념논증과 모순되지 않는다.
단토와 딕키 두 사람의 예술론은 최소한 이런 점을 말해준다.

만약 필요충분조건들이 예술작품이 되는 범위를 규정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작품이 되게 해주는 특정한 범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은 논의될 수 있다.
더욱이 예술의 개념이 실천적인 의미에서 열려 있더라도 폭넓게 열려 있는 건 아니다.
즉 모든 것이 항상 어떤 이유에서 예술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예술의 실천이 변화와 팽창으로 열려 있다는 예술론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관련이 있는 변화와 팽창은 우선하는 것들에 반드시 관련이 있거나 실천의 변화와 팽창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문제의 현상이 비결과들non sequiturs을 표명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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