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이후 예술론의 진화에 생산적이었다 
 

조지 딕키와 조셉 마골리스의 논증들과 더불어 단토의 논증은 20세
기 중반 이후 예술론의 진화에 생산적이었다.
단토는 '일련의 유사논증'을 반박하면서 동시에
두 필요조건을 내포하는 예술론을 분간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전개
했다.
단토는
오로지 유일하게Only if
(1) X가 어떤 것에 고나한 것이며
또한 (2) X가 의미를 구현할 경우
X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논증에서 '구현 embodiment'은 문제의 작품이 (그것이 무엇
에 관한 것이든) 자체의 의미에 대한 적절한 형상 속에서 무엇에 관
한 것이든 제시함을 뜻한다.
에세이 <예술과 의미 Art and Meaning>에서 단토는 이런 식의 예
술론을 되풀이하면서 최근의 반론들에 대항하는 자신의 입장을 옹
호하고 있다.

첫째 반론은
어떤 것이라도에 관한 것이 아닌 비구상 회화와 같은 예술작품의 명
백한 사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유사함 aboutness'은 예술의 필
요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단토는 응답하기를,
소위 말하는 비구상 회화의 사례들에 주목할 경우 사람들은 무에 관
한 회화의 진정한 사례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단토는 어떤 실재 역사적 사례에서도 자신이 항상 그것이 어떤 것
에 관한 것임을 보여줄 수 있다고 장담한다.

둘째 반론은
그가 늘 주장한 것을 그의 두 필요조건이 성공시키지 못하는 것은
예술철학이 풀어야 할 과제라는 비난과 관련이 있다.
예술작품과 실재 사물을 구분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단토의 논증이 그가 선호하는 두 사례, 즉 워홀의 <
브릴로 상자>와 실재 브릴로 상자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주장되는
데 있다.
상이하기는 하지만 두 상자 모두 어떤 것에 관한 것이며
둘 모두 자체의 의미를 적절하게 구현하기 때문에
단토의 논리에 의하면
둘 모두 예술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단토는
이 한쌍의 사례가 자신이 희망한 것만큼 전형적인 것들이 아닐 수
있음을 시인하면서
브릴로 상자들의 상이한 류의 상대적 구분을 밝히는 방법은 워홀의
상자와 프록터와 갬블의 상자들(이것들은 예술작품들이 아니다)에
각각 어울리는 비평의 유형을 정밀하게 바라보는 것이 되어야 할 것
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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