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키와 단토의 등장 이후
딕키와 마찬가지로 단토 또한 플라톤으로부터 바이츠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예술의 정의에 대한 논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생산적 노선을 최소한 시사하는 접근법들 속에 불충분한 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에 반해 딕키는 예술에 대한 정의의 가능성을 사회학적이라고 불리울 만한 방법, 즉 예술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사회적 정황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성취코자 했다.
단토는 미술사와 예술을 증명하기 위한 예술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단토의 미술계가 아이디어들의 세계라고 말한다면,딕키의 미술계는 사람들, 예술가들의 세계라 할 수 있다.
딕키와 단토의 논증은 궁극적으로 양립될 수 없지만 캐롤은 두 사람 모두
명확한 것들, 정황에서 분리된 예술의 속성들에 대한 강조로부터 불명확한 것들,
예술론을 확립하는 데서 버금가는 발달을 위한 단계를 마련하는 정황-의존(역사적 사회적) 특징들을 향하여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타당하다고 보았다.
딕키와 단토의 등장 이후 예술론에 대한 접근법들의 행진은 공격의 선두에 선 딕키와 단토에 의한 네오-비트겐슈타인 학파 논증의 틈새를 통해 나아가 네오-비트겐슈타인 학파에 대한 응답들, 즉 접근법에는 문화적, 역사적, 의도적, 네오-제도적 이론들과 이런 이론들의 혼용도 포함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최근에 소개되는 다양한 미학 이론들은 바이츠의 이론으로 회귀하는 그 이상이 아닌데 딕키와 단토의 이론의 도움을 받고 있다.
최근의 미학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 딕키와 단토는 예술의 정의에 대한 프로젝트로 복귀했을 뿐만 아니라 미학자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비결이 될 만한 불명확학 속성들, 즉 예술적 의도들과 같은 것들의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