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키의 논증은 맨델바움의 것과 유사해서
아서 단토는 예술을 정의하는 데 예술의 기원이 열쇄가 된다고 보았다.
단토는 많은 에세이에서 예술의 지위는 예술론들과 예술 이야기들 속에서 예술작품들의 기원에 의존한다고 논했다.
이에 비해 딕키는 예술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훗날 아트서클로 명명된 예술
의 제도, 즉 유전적 메커니즘을 꼽았다.
딕키의 논증은 맨델바움의 것과 유사해서 딕키가 그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딕키는 맨델바움이 예술을 정의하기 위한 속성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분리된 종목에서 지각될 수 있는 표현적인 속성들에만 관심을 기울였음을 지적했다.
맨델바움의 속성들을 딕키는 '정황에서 분리된 decontextualized' 속성들로 보았다.
딕키가 맨델바움으로부터 얻은 교훈은 예술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전통적인 접근법이나 일련의 유사성들을 적용하는 방법 모두 오류라는 점이다.
딕키는 명확한 유사성들의 규모를 좇아 작품들 사이의 공통의 맥락이나 맥락들을 찾기보다는 작품들의 정황에서 분리된 문제의 속성들이 예술을 증명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로서 관련된 작품들의 명확하지 않고 정황과 관련있는 속성들을 탐구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딕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인공물이 명확한 속성을 지니지 않았더라도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다.
단토의 기본 입장은 맨델바움의 논증이 알려지기 전에 이미 정해졌는데
그 취지는 맨델바움의 것과 평행을 이룬다.
단토는 예술작품이란 눈으로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예술작품이라고 증명하는 것이 정황에서 분리된 속성들을 명백하게 하는 업무가 아니라는, 즉 원천에서 따로 분리된 (미술계에서 따로 분리된) 종목을 날카롭게 바라보는 것으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아이디어를 요약하는 핵심을 찌르는 방법이다.
단토의 논증은 네오-비트겐슈타인 학파의 의제 속에 있는 명확한 속성들에 대한 지나친 신뢰에 관한 맨델바움식의 근심을 구체화시켰다.
단토는 우리가 분간하기 어려운 한쌍, 예를 들어 앤디 워홀의 <브릴로상자>와 프록터Procter와 갬블Gamble의 상자들(이것들은 예술의 오브제들이 아니다)을 보고 또 본다면 이들 사이의 상이함을 발견하지 못한다.
'일련의 유사논증'을 따를 경우 워홀의 상자와 평범한 상자 사이의 상이함은 발견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