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 깊은 평형'을 성취하기를 바라는 행복론

우리가 예술작품으로 분류하게 되는 인공물artifact에는 '예술 art'이란 꼬리표가 달려 있다.
이 꼬리표가 지닌 하나의 본질은 '예술'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주어지는 가능성에 달린 것인데,
즉 거기에는 '예술'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분류를 변함없이 알려주는 속성들의 동형의 세트 - 예술로 존재하기 위한 필요충분 속성들 - 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 따라서 예술의 개별적인 개념들이 달라지는 데서 그런 속성들의 동형의 세트가 있다는 건 부정적이다.
어떤 종류의 것들이 만족스러운 방법 안에서 사전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예술, 종교, 또는 도덕성과 같은 중요한 문화적인 류의 것들은 (이런 종류들에 포함되는 종목들이 인공물이든 아니든) 정의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속적으로 예술을 정의해야 하는 주된 점은 우리의 분류의 실천에 있다.
이 실천에는 하나의 정의가 성취될 수 있다는 다소 상이한 하나의 개념이 요구된다.
정의는 다소 설명적이며 다소 암시적이거나 수정된 것이 될 것이다.
이런 분류의 실천은 '이성적 재건 rational reconstruction'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스텍커가 말하는 '사려 깊은 평형 reflective equilibrium'을 성취하기를 바라는 행복론에 기반을 둔 제시된 정의들에 관한 토론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이는 가능할 뿐 아니라 실제에 있어 양립될 수 없을 수도 있는 몇 개의 정의들이 동등하게 훌륭한 재건들이 될 것이란 점에서 그럴싸해 보인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려면 여기에는 최소한 일치하는 견해에 의해 골라진 공통의 특징들을 갖기를 바라는 소망이 동기가 요구된다.

하나의 정의가 수정과 더불어서 설명을 혼용하는 방법의 예를 제시하는 건 최근의 예술의 개념이 200년 전에 존재한 어떤 예술의 개념과 엄청나게 비교되는 예술작품들의 영역을 확장시킨다는 사실을 고려하는 것이다.
전통 예술의 형식들은 갖가지 전달매체들, 개념예술작품들, 퍼포먼스작품들에 의해서 불분명해졌을 뿐 아니라
사진과 시네마와 같은 많은 새 형식들이 소개되었고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형식들에 많은 새로운 재료들이 소개되었으며
많은 전통적 실천들이 과거에 비해서 더욱 더 쉽게 예술작품들을 생산하는 데 있어 능력이 있음이 인정되었다.
오늘날 전통적 예술 혹은 '민중 folk' 예술로 명명되는 이 후자 분류에 속하는 오브제들이 뮤지엄 속으로 말 그대로 쏟아져들어갔다.
이 만큼이나 어떤 최근의 예술 개념도 이론에 수용되어만 한다는 건 사실인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어져야만 하는가 하는 건 훨씬 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며 더욱이 딱 한 가지 방법으로 그럴 수 있다는 건 믿기지 않는 일이다.
일부 미학자들의 제도적 이론들이 지나치게 무비판적으로 설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아방가르드들에 의해 꾸며진 확장들을 알아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것들은 전통예술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 훌륭하지 못했지만 현재 예술로 명명명된called 어떤 것들이 정녕 그렇지 않다는 점을 부정하는 개념으로 열려 있다.
기능적 그리고 역사적 이론들에는 전통예술을 인정하는 데 대한 근거들이 좀더 있으나 각각의 이론들이 다소 상이한 방법들로 주장되고 있다.

이런 의견들을 최근의 주요 제안들 모두가 동등하게 만족스러운 재견들로 주장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주장들에는 신뢰할 만한 점이 없다.
이런 주장들에서 단순히 만족스러운 재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이런 정의들은 분류의 실천을 어느 정도 이상화한 일치일지라도 이치에 닿게 하는 데 대한 것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가 예술작품들로 평가하는 기능들, 속성들, 또는 '고려 사항들 regards'과 관련된 것들을 피한 제도적 정의들과 같은 정의들은 이런 참조들과 관련 있는 정의들 만큼이나 이 실천의 개념들을 많이 이상화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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