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텍커의 전체적 논증의 요점
로버트 스텍커는 '예술을 정의하는 데 대한 회의주의 Skepticism About Defining Art'에 관해 언급했다.
그는 예술을 정의하는 최근의 회의주의가 피상적으로 볼 때는 20세기 중반에 제기된 반본질주의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반본질주의란 비트겐슈타인 학파의 언어 개념 속에 강력한 이론적 기반을 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회의주의에는 단일한 이론적 기반이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최근의 회의주의에 단편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으며 논증들이 상이한 논증자들에 의해 나타났기 때문에 하나 하나 따져보아야 한다.
이런 일련의 회의주의의 공통적 특징으로 스텍커는 절망을 꼽는다.
회의주의 논증을 제기하는 미학자들은 이런저런 동기들로 예술의 정의 대해서 비관론자들이 된다.
스텍커의 전체적 논증의 요점은 미학자들의 일련의 예술에 대한 정의가 무엇을 시도하려는 것인지 그 점을 우리가 알아야 하고 그럴 경우 완전한complete 집합점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는 독특한데
그는 철학에서 일치의 결여가 어떤 것을 정의하는 데 있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어떠한 철학적 프로젝트에도 일치의 결여는 다반사임을 스텍커는 지적한다.
그러면서 일치의 결여 때문에 절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철학 외에도 많은 것들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정의에 반하는 동일하지 않은 유사논증을 그는 귀납적 논증으로 보며 여기에 두 이설이 있음을 지적한다.
한 이설은 예술을 정의하는 이런 시도가 실패했기 때문에 다음의 시도 또한 실패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또 다른 이설은 정의들이 철학의 이 분야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그 정의들은 예술철학에서도 실패할 것이라고 진술하는 것이다.
두 가지 이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가운데
스텍커는 첫 번째 이설에는 다소 타당성이 있더라도 그것이 예술을 정의하는 데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란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성공적인 정의가 발견되었을 때 이것이 덜 성공적인 시도들인 초기 시도들로부터의 기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임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이설은 좀더 관심사가 되는 것으로
그는 "철학이 정의들을 발견하는 데 성공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것은 편향적임을 지적한다.
예술의 정의에 대한 일치란 없겠지만 결정적으로 논박된 적이 없는 제안들이 있음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