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이 '미의 전당'으로 확립된 것은
 

뮤지엄Museum의 어원 Mouoelov는 본래 그리스 신화에서 말하는 시, 음악 등 아홉 가지의 학예를 관장하는 여신 뮤사(영어로 뮤즈Muse)의 신전을 가리켰다.
원래 뮤사가 담당하는 아홉 학예 가운데 미술은 포함되지 않았다.
뮤지엄이란 말이 콜렉션이란 의미와 '콜렉션을 보존하는 장소'라는 의미를 이중으로 갖게 된 것은 16-17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때까지는 캐비넷Cabinet이라든지, 미술공예실Kunstkammer, 진품실Wunderkammer 등으로 불리운 궁전이나 저택 등의 방이 왕후 귀족 등의 콜렉션 소장처였다.
또한 갤러리Gallery라 불리운 복도나 좁고 기다란 방에도 콜렉션이 진열되어 이 말은 화랑이란 한정된 의미를 갖게 되었다.

18세기 이전의 예술적 흥미는 왕족과 귀족의 위신과 과시, 박물학적 관심, 진기한 것들에 대한 기호 등과 뒤섞인 면이 농후하여 회화, 조상과 더불어 화폐, 메달, 서적 등의 골동류와 박래품, 박물표본 등도 수집대상이 되었다.
이런 수집품들은 왕후 귀족의 저택을 치장하는 장식품이며, 수집가의 권위와 재력을 과시하는 상징물이었다.
물론 예술진흥에 열심이었던 프랑스의 루이 14세를 시작으로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린 수집가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수집품들은 일부 특권층에만 접근 가능한 사유재산에 그쳤으며, 특정한 날 특정한 사람만이 관람할 수 있었다.

왕후 귀족의 수집품들이 일반인에게 널리 공개된 것은 18세기에 들어와 사회구조의 변동과 문화적 조건의 변화에 의해서이다.
즉 신흥 부르주아의 대두, 고고학, 역사학 등 인문과학의 발달, 예술개념의 확립과 예술의 문화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 무엇보다도 수집품 공개에서 사회의 진보에 공헌하려는 의식을 보여주는 계몽사상의 보급 등이다.
1793년에 개관된 루브르 뮤지엄이 좋은 예이다.

뮤지엄이 '미의 전당'으로 확립된 것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서였다.
19세기에 왕후 귀족이나 교회의 수집품들에 대한 국유화, 공공화가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갖가지 역사양식에 의한 뮤지엄이 잇달아 설립되었는데 대부분 고전적인 기념비적 이미지를 계승했다.
비엔나의 왕립 미술사 뮤지엄만 해도 오늘날의 정황에서 보면 고전적인 뮤지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