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하게도 뭉크의 풍경화에는
김광우의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미술문화)에서
주제별로 보더라도 뭉크, 쉴레, 클림트 세 사람의 회화 세계는 매우 다르다.
풍경화를 예로 들면 클림트의 풍경화는 관람자의 방을 품위 있게 장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클림트는 인공적 자연을 만들어 관람자의 즐거움을 증가시켰다.
그의 빼어난 자연주의 묘사 기술과 섬세한 색상 그리고 장식적 요소는 풍경화를 바라보는 관람자가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그림에는 눈에 즐거운 것이 마음에 즐거운 것이라는 쾌락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극도로 이상화된 클림트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노라면 인공적 자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는 그가 원하는 자연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자연에서 장식적 소재를 찾아 회화를 위해 자신의 것으로 바꾸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영향을 받은 쉴레가 그린 풍경화에서는 누드화에서 보는 이그러진 비정형적인 요소와 장식적인 요소가 있다.
고독한 사람의 눈에 비치는 쓸쓸한 자연이 보이는데 이는 자신의 우울한 마음을 담은 풍경화이다.
클림트가 숲을 선호한 데 비해 쉴레는 자신의 고독한 마음을 상징하는 앙상하고 야윈 불구의 나무를 선택했다.
특이하게도 뭉크의 풍경화에는 그가 평생 씨름해온 물밀듯이 닥쳐오는 불운한 세계의 공포나 위협 같은 것이 전혀 없고, 오히려 관람자에게 위안을 안겨주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
<파도 the Wave>(1921년작)를 예로 들면 뭉크는 자연주의 색채를 무시하고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등으로 조형성을 강조했다.
사람을 주제로 그릴 때와는 달리 그가 자연에서 위안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인물을 그릴 때 배경이 되는 자연은 뭉크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음산하고 불길한 풍경이 되지만, 자연 자체를 관조할 때는 자아를 버리고 바연의 품에 편안한 마음으로 안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