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쉴레의 에로티시즘 
 

클림트가 1904년에 자위행위를 하는 여자를 묘사한 데서 예술적 아이디어를 얻은 쉴레는 1910년 관람자로 하여금 여자의 음부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포즈를 달리 해서 그렸다.
당시만 해도 누드는 화가들의 보편적 주제였지만 모델의 음부를 직접 볼 수 없게 몸을 옆으로 틀게 한다든가 손으로 가리게 하는 등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을 피했다.
쉴레는 이런 금기를 깨고 과감하게 관람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자신의 성기가 드러난 누드를 주제로 여러 점 그리기도 한 그는 1911년에는 자위행위하는 모습마저 폭로하여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쿠르베와 로댕도 여자의 음부를 관람자를 향해 그린 적이 있지만 쉴레의 그림은 두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성의 사슬을 완전히 끊는 것이었다. 1911년 이후 그의 누드는 더욱 과격해졌다.
섹스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911년 이후 그의 누드는 더욱 과격해졌다.
섹스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섹스는 그에게 해결되어야 할 커다란 과제였다.
성적 충동은 누구에게도 있지만 인류는 이를 감추는 문화를 형성하고 섹스를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했다.
생리적으로 자연스러운 이런 충동을 억제하는 것에 쉴레는 반발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춘화로 여겼지만 친구들과 그의 그림을 수집하던 컬렉터들은 그가 춘화작가가 아님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쉴레는 비엔나 사람들의 도덕적 이중성을 고발하려고 했다.

뢰슬러는 말했다.

쉴레의 에로티시즘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열한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
그가 종종 에로틱한 장면을 그린 것은 아마 섹스에 대한 신비감 때문이었을 것이며
...
끊임없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로운 느낌은 그에게 으슬으슬한 것으로 어려서부터 있었으며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그가 명랑할 때도 가족과 함께 있을 때도 그는 외로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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